굿판 된 저승법정, 홍련의 한을 씻다[문화대상 이 작품]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4월 28일, 오전 09:19

[이윤정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뮤지컬 ‘홍련’(배시현 작, 이준우 연출)은 저승으로 건너가지 못한 존재를 붙들어 왜곡된 기억을 되짚게 하는 제의적 과정을 무대 위에 호출한다. 작품이 겨냥하는 것은 진위의 판결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해자로 오인하게 만든 기억의 구조를 다시 쓰는 일이다.

‘홍련’은 한국 전통 설화인 ‘장화홍련전’과 무속 신화 ‘바리데기’의 주인공인 홍련과 바리가 사후 재판에서 만난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초연 이후 확장을 거듭하며 동시대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서사는 기승전결 대신 씻김굿의 절차(오구물림·고풀이·씻김·길닦음)를 따른다. 이는 단순한 형식 차용이 아니라 치유의 논리 자체를 서사의 골격으로 삼은 선택이다. 핵심 반전 또한 이 구조에서 발생한다. ‘아버지를 죽였다’는 살인의 기억은 자기혐오가 만들어낸 왜곡이다. ‘홍련’은 피해자가 자신을 가해자의 위치로 밀어 넣는 트라우마의 메커니즘과 억압의 내면화 과정을 무속 서사의 언어로 풀어낸다.

뮤지컬 ‘홍련’ 공연 사진(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박신애의 음악은 단일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대 뮤지컬의 서사적 흐름 위에 국악적 호흡이 개입하며 장면마다 질감을 달리하고, 유사한 선율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감정의 밀도를 서서히 축적한다.

특히 넘버 ‘버려진 소녀-오구물림’에서 저승신 바리 역의 이아름솔의 목소리는 외침에서 창(唱)으로 전환하며 한(恨)의 서사를 바로잡듯 새로운 결을 덧입힌다. 록 뮤지컬의 발성과 창의 소리를 넘나드는 이중적 톤은 사건을 객관화하는 거리감과 세계를 끌어안는 연민을 동시에 작동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의 결과 깊이를 함께 경험하게 한다.

홍련 역의 홍나현은 억눌린 분노와 비틀린 자존심, 그 이면의 상처를 층위 있게 드러낸다. 성숙한 체념이 아니라 열일곱 살의 순전한 감정으로 버텨내는 한(恨), 그 억척스러운 무게를 소녀의 몸으로 감당해내고, 바리와의 호흡 속에서 이 작품이 요구하는 감정의 파고를 완성한다. 여기에 강림과 차사들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관객과 무대 사이를 매개하는 투과막으로 기능한다.

남경식 무대디자이너의 기하학적 무대는 어느 한 세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불확정의 공간을 형성한다. 무대 뒤로는 유연한 물의 이미지 곡선의 배경이 이질적으로 놓이며, 직선과 곡선의 대비가 이 공간의 경계 없음을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안현주의 의상디자인 또한 전통 한복의 선과 색을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 요소를 더해 시간의 층위를 중첩시키며 삶과 죽음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이 작품의 세계관을 지지한다.

뮤지컬 ‘홍련’ 공연 사진(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작품의 정점은 마지막 씻김 장면에 있다. 바리가 홍련의 억울함과 기억을 온전히 들어주는 ‘청종’(聽從)의 순간은 곧 구원의 행위로 이어진다. 바리가 씻김의 행위로 홍련을 처음으로 쓸고 어루만지는 순간,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너를 용서하라”는 가사가 더해지며 제의와 노래, 몸짓이 하나의 행위로 결합한다. 17세기 기록 이후 반복되어온 미완의 서사는 이 장면에서 비로소 하나의 완성에 도달한다. 공연예술의 일회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덧바르고 덧입는 이 과정에서 관객은 역설적으로 비움에 이른다. 청종이 구원보다 앞선다는 오래된 진실이 오늘의 무대 위에 다시 새겨진다. 씻김굿의 절차와 뮤지컬 형식이 하나의 몸으로 작동하는 이 드라마투르기는 한국 창작 뮤지컬이 독자적 문법을 확장해가는 과정의 한 발견으로 기록될 만하다. 5월 1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한다.

이윤정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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