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은 한국 전통 설화인 ‘장화홍련전’과 무속 신화 ‘바리데기’의 주인공인 홍련과 바리가 사후 재판에서 만난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초연 이후 확장을 거듭하며 동시대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서사는 기승전결 대신 씻김굿의 절차(오구물림·고풀이·씻김·길닦음)를 따른다. 이는 단순한 형식 차용이 아니라 치유의 논리 자체를 서사의 골격으로 삼은 선택이다. 핵심 반전 또한 이 구조에서 발생한다. ‘아버지를 죽였다’는 살인의 기억은 자기혐오가 만들어낸 왜곡이다. ‘홍련’은 피해자가 자신을 가해자의 위치로 밀어 넣는 트라우마의 메커니즘과 억압의 내면화 과정을 무속 서사의 언어로 풀어낸다.
뮤지컬 ‘홍련’ 공연 사진(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특히 넘버 ‘버려진 소녀-오구물림’에서 저승신 바리 역의 이아름솔의 목소리는 외침에서 창(唱)으로 전환하며 한(恨)의 서사를 바로잡듯 새로운 결을 덧입힌다. 록 뮤지컬의 발성과 창의 소리를 넘나드는 이중적 톤은 사건을 객관화하는 거리감과 세계를 끌어안는 연민을 동시에 작동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의 결과 깊이를 함께 경험하게 한다.
홍련 역의 홍나현은 억눌린 분노와 비틀린 자존심, 그 이면의 상처를 층위 있게 드러낸다. 성숙한 체념이 아니라 열일곱 살의 순전한 감정으로 버텨내는 한(恨), 그 억척스러운 무게를 소녀의 몸으로 감당해내고, 바리와의 호흡 속에서 이 작품이 요구하는 감정의 파고를 완성한다. 여기에 강림과 차사들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관객과 무대 사이를 매개하는 투과막으로 기능한다.
남경식 무대디자이너의 기하학적 무대는 어느 한 세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불확정의 공간을 형성한다. 무대 뒤로는 유연한 물의 이미지 곡선의 배경이 이질적으로 놓이며, 직선과 곡선의 대비가 이 공간의 경계 없음을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안현주의 의상디자인 또한 전통 한복의 선과 색을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 요소를 더해 시간의 층위를 중첩시키며 삶과 죽음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이 작품의 세계관을 지지한다.
뮤지컬 ‘홍련’ 공연 사진(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덧바르고 덧입는 이 과정에서 관객은 역설적으로 비움에 이른다. 청종이 구원보다 앞선다는 오래된 진실이 오늘의 무대 위에 다시 새겨진다. 씻김굿의 절차와 뮤지컬 형식이 하나의 몸으로 작동하는 이 드라마투르기는 한국 창작 뮤지컬이 독자적 문법을 확장해가는 과정의 한 발견으로 기록될 만하다. 5월 1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한다.
이윤정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