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과학수사의 초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5월 05일, 오전 06:00

지문. (출처: Unknown author, 1892,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05년 5월 5일, 영국 런던중앙형사재판소가 인류 사법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판결을 내렸다. 한 살인사건 현장에 남겨진 유일한 희미한 손가락 자국을 근거로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것이다.

앞서 3월, 런던 남동부 데프트포드의 한 페인트 가게에서 가게 주인 토마스 패런과 그의 아내가 참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범인들이 강제로 연 것으로 보이는 빈 금고가 놓여 있었고, 그 표면에는 검은색 기름얼룩이 묻은 지문 하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지문은 수사 보조 수단에 불과했으나, 런던 경시청의 지문국 설립자 에드워드 헨리는 이 자국에 주목했다.

수사팀은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알프레드 스트래튼과 앨버트 스트래튼 형제를 체포했다. 그들의 지문을 채취해 금고에서 발견된 지문과 대조한 결과, 형 알프레드의 엄지손가락 지문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재판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배심원들과 대중은 "사람의 손가락에 새겨진 선이 어떻게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느냐"며 과학적 증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변호인 측은 지문 감식 기술의 불완전성을 공격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측 전문가는 지문의 고유성과 불변성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냈고, 결국 배심원단은 지문의 과학적 가치를 인정했다.

이 판결은 근대 수사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목격자의 주관적 진술이나 고문에 의한 자백에 의존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물리적 증거를 우선시하는 '법과'학(Forensic Science)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날의 판결을 계기로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문 감식 기술은 법정의 불신을 뚫고 승리하며 현대 과학 수사의 초석이 됐다. 스트래튼 형제의 판결은 "범인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수사의 철칙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결정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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