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오후의 마지막 잔디'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대표작 '오후의 마지막 잔디'가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 20점과 함께 한 권의 일러스트 픽션 북으로 나왔다. 1982년 발표된 단편에 청량한 여름의 감각을 덧입힌 이번 책은 잔디 깎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19살 청년의 선명하고 비현실적인 하루를 다시 불러낸다.
이 책은 1982년 잡지 '다카라지마'에 발표됐다가 이듬해 하루키의 첫 소설집 '중국행 슬로보트'에 실린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이야기는 이 마지막 하루에 집중한다. 티셔츠와 반바지, 테니스화 차림으로 라이트밴을 몰고 정원으로 향하는 길 위에는 여름 햇빛과 로큰롤, 뜨거운 공기와 멀리 보이는 풍경이 겹친다. 하루키는 이 계절의 감각을 간결한 문장으로 밀어 올린다.
주인공은 기계보다 수작업으로 잔디를 깎는 방식을 좋아한다. 길게 자란 잔디를 정리해 정원의 인상이 확 달라지는 순간에서 일의 보람을 느낀다. "먼 곳의 정원에서 먼 곳의 잔디를 깎는 게 좋았다"는 문장은 이 소설의 리듬과 정서를 응축한다.
[신간] '오후의 마지막 잔디'
그러나 정원에 도착한 뒤 분위기는 조금씩 기묘하게 흐른다. 현관문을 열고 나타난 집주인은 오전부터 위스키를 홀짝이며 위압적인 기운을 풍긴다. 주인공은 불쑥불쑥 떠오르는 이별의 기억과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 속에서도 끝까지 잔디를 깎는다.
이 작품은 줄거리보다 감각이 먼저 남는 소설에 가깝다. 내리쬐는 태양빛, 시원한 아이스커피, 라디오 음악, 우거진 나무와 초록빛 잔디가 겹치며 한여름 하루의 결을 만든다. 그 위로 이별 직후의 허전함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얇게 덧입혀진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은 이 감각을 더 또렷하게 붙든다. 경쾌하고 청량한 선으로 그려진 장면들은 하루키 문장의 여백을 채우기보다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소설의 공기를 시각으로 번역한다. 오래 협업해 온 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호흡이라는 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 오후의 마지막 잔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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