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알프레드 요들(오른쪽 가운데). (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194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45년 5월 7일 새벽 2시 41분, 프랑스 랭스에 위치한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한 작은 교실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서명이 이뤄졌다. 나치 독일 국방군 총참모장 알프레트 요들 상급대장은 연합군에 대한 독일의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아돌프 히틀러의 자살 이후 총통직을 승계한 카를 되니츠 제독은 당시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하고 서부전선의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된 상황에서, 되니츠의 전략은 '최대한의 항복 지연'을 통해 더 많은 독일군과 피란민을 서방 연합군 점령지로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독일의 부분적인 항복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는 모든 전선에서의 동시적이고 전면적인 항복이 아닐 경우 서부 전선을 봉쇄하겠다고 압박했다.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린 요들은 되니츠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연합군과 소련군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이 문서는 다음 날인 5월 8일 23시 01분을 기해 모든 전투 행위를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로써 인종주의와 팽창주의를 내세우며 전 세계를 위협했던 나치즘 체제가 공식적으로 소멸했다. 독일 점령하에 있던 유럽 국가들이 주권을 되찾았으며,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적 비극의 현장이 전 세계에 실체를 드러냈다.
랭스에서의 항복 이후, 소련의 이의 제기로 5월 8일 베를린에서 또 한 번의 공식 서명식이 열렸다. 이는 전후 처리 과정에서 서방과 소련 사이의 미묘한 주도권 다툼과 향후 냉전으로 이어질 긴장 관계를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비록 태평양 전쟁이 종결되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유럽 대륙을 뒤덮었던 화염이 꺼진 이날은 현대사의 분기점이 됐다. 인류는 이 폐허 위에서 유엔(UN)을 창설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아래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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