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몰랐던 고려' (휴머니스트 제공)
1000년 전 세워진 고려가 단순히 사라진 옛 나라가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설계도였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증명해 낸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30여 년 간 고려사 연구에 매진해 온 역사학자 박종기다. 그는 조선의 그림자에 가려져 우리가 잊고 있었던, 훨씬 더 역동적이고 세련된 '진짜 뿌리'를 고려에서 찾았다.
흔히 '코리아'(Korea)라는 이름이 고려에서 왔다는 건 다들 안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쓰는 K-방산의 뿌리는 고려의 화약 무기 기술에서 찾을 수 있고, 반도체나 가전제품으로 유명한 한국의 정밀한 손재주는 고려청자와 금속활자를 만들던 장인 정신에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저자가 특히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가 단순한 식물을 넘어 우리 옷의 혁명을 일으킨 'K-패션'의 시작이었다고 진단한 점이 흥미롭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문명의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고려라는 튼튼한 토대 위에서 수백 년간 쌓여온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고려의 흔적이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 이름의 70%가 이미 고려 시대에 정해졌으며, 누구나 하나씩 가진 '성씨'와 '본관' 역시 고려 시대에 틀이 잡혔다. 심지어 시험을 통해 공정하게 인재를 뽑는 문화나 양성평등을 중시하던 가족 제도까지, 현대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오히려 조선보다 고려와 더 닮아 있다는 분석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사를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서 시작됐을까?"라는 호기심을 따라 오늘날의 일상에서 과거로 거꾸로 올라가는 방식 덕분에 역사 지식이 부족한 학생들도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다.
자칫 민족주의적 자부심만 강조하다 보면 객관성을 잃기 쉽지만, 이 책은 철저히 제도와 유물, 기록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해 설득력을 높였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학벌이나 측근 정치의 뿌리까지 가감 없이 파헤친 점도 돋보인다. 조선이라는 두꺼운 장막을 걷어내고 '진짜 한국인의 원형'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다.
△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고려/ 박종기 글/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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