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깊은 시간》 전시 전경 이미지, 갤러리현대, 서울, 2026_1층 (갤러리현대 제공)
작가 김명희의 개인전 '깊은 시간'이 서울 삼청로에 위치한 갤러리현대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6월 14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1980년대 뉴욕에서 그린 드로잉부터 최근의 신작까지, 5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예술 여정을 한자리에 모은 작은 회고전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가는 '앰뷸런트'(ambulant)라고 정의한다. 1970년대 남성 중심의 한국 화단에서 벗어나 뉴욕으로 떠났던 그는, 1990년 춘천의 한 폐교에서 버려진 칠판을 발견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배움이 머물다 간 칠판은 그에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시간이 쌓이고 지워지는 삶의 기록장과 같았다.
전시장은 층별로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1층에서는 수몰된 마을의 기억을 담은 숲과 자연의 풍경이 펼쳐진다. 2층에서는 영상과 회화가 결합된 자화상을 통해 일상과 내면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세상을 떠난 남편 김차섭 작가를 그리워하며 완성한 신작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난 고려인들의 모습과 거대한 지도를 통해 개인의 삶이 어떻게 역사와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김명희, 전쟁이 지난 후, 2024, 칠판에 오일 파스텔, 115.5 × 176.5 cm (갤러리현대 제공)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작가가 평생에 걸쳐 마주한 수많은 장소와 사람들의 흔적을 층층이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며 "작가에게 그림이란 과거를 그리워하는 도구가 아니라,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김명희의 작품은 마치 인류학자의 일기장 같다.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디아스포라'나 '이동'이라는 주제를 칠판 위 오일 파스텔의 부드러운 빛으로 따뜻하게 녹여냈다. 복잡한 이론에 갇히지 않고 삶의 현장을 정직하게 기록해 온 그의 작업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깊은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김명희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한 후 뉴욕과 춘천을 오가며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일궈온 예술가다. 1972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다. 남편인 김차섭 화가를 도우면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국가 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현대미술에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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