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유물 기증한 아름다운 형제…"문화유산, 제자리 있을 때 가치"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5월 08일, 오전 12:59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해 기증을 결심했습니다.”

김창원(왼쪽 세번째), 김강원(왼쪽 두번째) 형제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순종예제예필현판' 합동 기증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 김씨 형제, 허민 국가유산청장. (사진=뉴시스)
김창원씨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백자청화이진검묘지’·‘순종예제예필현판’ 합동 기증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합동 기증식은 김창원·김강원 형제가 ‘백자청화이진검묘지’·‘순종예제예필현판’을 각각 국내에 기증하면서 마련됐다.

일본에서 고미술 거래업체 청고당을 운영하는 동생 김강원씨는 이전에도 백자청화김경온묘지, 백자철화이성립묘지, 조현묘각운시판 등을 세 차례 문화유산을 기증한 바 있다. 이번에 형인 김창원씨도 동생의 뜻에 동참해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기탁했다.

김강원씨는 “처음 묘지를 기증한 이유는 한국에 있는 자손들이 조상의 묘지가 해외에 있는 걸 모르고 살아간다 생각해 그걸 돌려드리는 게 올바르다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 기증하는 현판은 조선 왕실의 유물이기에 경복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기증 동기를 말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형제가 각각 문화유산을 기증하며 그 뜻을 함께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며 “앞으로도 해외에 있던 우리 문화유산이 다시 돌아와 국민과 그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는 조선 후기 예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 이진검(李眞儉, 1671~1727)의 묘지(고인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적어 함께 묻은 돌이나 도판)로, 1745년에 제작됐다. 푸른색 안료로 글씨를 쓴 백자판 10점으로 이뤄져 있다. 각 장의 앞면에는 이진검의 생애와 행적, 가계, 장례 관련 내용이 기록돼 있다. 뒷면에는 묘의 위치와 방향 등 풍수 관련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이조판서였던 이덕수가 글을 짓고, 조선 대표 서예가이며 이진검의 아들인 이광사가 글을 써 가치가 크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이광사의 글씨 중 이러한 서체가 처음 발견됐고, 연암 박지원 등이 사용한 서체의 원류를 살펴볼 수 있어 서예사적 의미가 크다”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명가의 온전한 묘지 실물이 발견된 데 문화유산적 가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창원, 김강원 형제가 기증한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순종예제예필현판'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 전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순종예제예필현판’도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현판으로 제작해 역사적 의미가 크다. 현판은 1892년(고종29년) 9월 진연에서 순종이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며 지은 글을 새긴 현판이다.

현판 속 글은 어머니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며 고종과 명성황후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글은 ‘진찬의궤’, ‘순종어제곤성홍류’ 등 관련 문헌에도 수록돼 있다. 순종의 글씨는 해서체로 엄정하고 단아하며 세자로서의 서격(書格)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발견된 현판들은 훼손됐거나 유실된 경우가 많은데, 이 현판은 덧칠한 흔적도 없는 온전한 형태로 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진연과 관련한 기록 자료가 함께 전해져 제작배경·내용 등 고증 근거가 명확한 것도 특징이다. 구본능 단청기술연구소장은 “당시 현판제작 수법과 단청 문양기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기증식을 준비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박정혜 이사장은 “문화유산 기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사례”라며 “기증자들의 소중한 뜻이 국외문화유산의 연구와 보존,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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