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극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는 드라마 중심의 한류 1.0, K-팝 중심의 2.0, OTT 중심의 3.0을 지나 지금은 AI와 팬덤이 결합한 4.0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K-콘텐츠 산업이 지속성장하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경쟁을 넘어 콘텐츠 생태계 자체를 설계하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전병극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는 지난 7일 서울 홍익대학교 특강에서 AI가 제작·유통·소비 구조를 급변하고 있다며 선도적으로 추진할 정책 과제 5가지를 제시했다.
'AI 시대와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이번 특강에서 전 교수는 콘텐츠 산업의 경쟁 기준이 달라졌다며 제작 속도와 유통 정밀도, 소비 예측 능력까지 함께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의 경쟁이 개별 작품보다 생태계 설계 능력에서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석좌교수는 AI 시대에 기획과 제작, 편집과 배급, 추천과 광고, 소비 분석이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각각의 과정이 하나의 데이터 구조 안에서 연결되면서 산업의 작동 문법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생성형 AI가 바꾼 제작 현장도 구체적으로 짚었다. 시나리오 초안 작성, 콘셉트 아트 제작, 음악과 음성 작업, 영상 편집, 자막과 번역 자동화까지 제작 전반에 AI가 들어오면서 비용과 시간의 계산법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유통 단계의 변화도 크다고 했다. 추천 알고리즘이 노출 순서와 소비 흐름을 좌우하고, 이용자는 단순 시청자를 넘어 공유와 댓글, 팬 커뮤니티 활동으로 확산에 참여하는 주체가 됐다고 설명했다.
할리우드 너머로 이동한 권력…플랫폼·데이터·AI가 결합했다
전 교수는 미국 사례를 들며 해외 산업이 이미 콘텐츠 산업에서 기술 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경쟁력은 할리우드나 전통 미디어 기업에만 있는 게 아니라, 콘텐츠와 플랫폼, 클라우드, 데이터, AI가 맞물린 구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구글과 유튜브는 영상 데이터에 광고 체계를 결합해 추천과 수익화를 정교하게 다듬고 있고, 아마존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프라임 비디어(Prime Video)를 함께 돌리며 콘텐츠 소비를 구매와 광고로 넓히고 있다고 소개했다.
애플은 기기와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유통의 관문을 쥐고 있고, 넷플릭스는 시나리오 분석부터 제작비 배분, 추천 시스템, 개인화 썸네일, 글로벌 동시 배급까지 데이터를 중심으로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모델이 기회만 안겨 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제작 효율과 번역·더빙 자동화, 광고 정교화 같은 이점이 커졌지만, 저작권 분쟁과 창작자 역할 축소, 플랫폼 독점, 데이터 집중 같은 부작용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전병극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는 앞으로의 전략으로 IP, 플랫폼, 데이터, AI, 팬덤을 묶는 구조 설계를 제안했다.
'오징어 게임'은 한계를, BTS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 교수는 K-콘텐츠의 진화 경로도 함께 설명했다. 드라마 중심의 한류 1.0, K-팝 중심의 2.0, OTT 중심의 3.0을 지나 지금은 AI와 팬덤이 결합한 4.0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장 배경으로는 압축 성장, 디지털 친화성, 팬덤 문화, 스토리 경쟁력, 제작 효율성, 정책 지원, 플랫폼 적응력을 꼽았다.
다만 강한 제작 역량과 팬덤에 비해 플랫폼 지배력과 데이터 주권은 약하다고 했다. 이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오징어 게임'을 들었다.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입증했지만, 산업 구조 차원에서는 IP 권리와 유통 주권, 시청 데이터가 글로벌 플랫폼에 쏠리는 문제도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BTS는 다른 길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했다. 팬을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홍보와 유통, 소비와 확산에 참여하는 산업의 주체로 바꿔 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오징어 게임은 구조의 한계를 보여주었고, BTS는 그 구조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콘텐츠를 넘어 산업을 설계하는 5대 정책과제
전 교수는 앞으로의 전략으로 IP, 플랫폼, 데이터, AI, 팬덤을 묶는 구조 설계를 제안했다. 그는 "한국은 이미 콘텐츠 강국이지만,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콘텐츠의 가치와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원천 IP 확보, 플랫폼 협상력 강화, 데이터 자산 축적, 팬덤 기반 직접 유통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책 과제도 제시했다. 정부는 제작 지원을 넘어 원천 IP 육성과 데이터 라이선싱 체계, AI 창작 가이드라인, 창작자 전환 교육, 스마트 규제까지 함께 짜야 하고, 산업계도 개별 작품 흥행에만 매달리지 말고 세계관 확장과 프랜차이즈 전략, 팬덤 커뮤니티, 데이터 확보 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AI 기반 콘텐츠 산업의 쟁점으로 창작성 기준, 창작 노동시장 변화, 학습 데이터와 저작권 갈등, 투명성과 규제 문제를 들었다. 프롬프트 설계와 선별, 편집, 후반 작업을 어디까지 창작으로 볼지 기준이 필요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 번역가, 성우, 작곡가 같은 디지털 기반 직군의 재편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강연 말미에서 전 교수는 한국 콘텐츠 산업이 더는 남의 플랫폼 위에서만 성과를 실현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한국 콘텐츠산업은 잘 만드는 나라를 넘어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나라로 가야 한다"며 "콘텐츠 수출국에서 산업 설계국으로 도약해야 하고, 작품의 성공을 넘어 IP, 데이터, 플랫폼, AI, 팬덤을 결합한 지능형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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