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끝에 남은 노인과 눈먼 개…중국 대표작가 옌롄커의 중편소설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5월 11일, 오전 09:01

[신간] '연월일'


'연월일'은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옌롄커의 중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거대한 사건보다 더 작은 존재들에 붙들린다. 셴 할아버지와 앞을 보지 못하는 개, 그리고 말라 죽지 않으려 버티는 옥수수 한 포기가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마을 사람들이 떠난 뒤 셴 할아버지는 황량한 산맥에 홀로 남는다. 그 곁에는 비를 비는 제단에 묶여 울부짖다 시력을 잃은 개가 있다. 둘은 먹을 것과 물이 바닥난 자리에서 옥수수 이삭 하나를 살리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틴다.

소설은 이 관계를 단순한 동행으로 두지 않는다. 노인은 개를 껴안고, 개는 노인 곁을 떠나지 않는다. 밤이면 둘은 옥수수 줄기 옆에 앉아 자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생명이 거의 고갈된 세계에서 서로서로 붙드는 방식이 이 장면들에 모여 있다.

핵심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다.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대결 구도로 흘러가기보다, 더 약한 존재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먼저 무너질 수도 있는 처지를 끝내 받아들이는 태도에 시선을 둔다. 옥수수 한 포기는 식량이면서 동시에 다시 이어질 시간의 가능성으로 놓인다.

이번 판본은 예전에 다른 중단편과 함께 실렸던 '연월일'을 독립된 책으로 다시 묶은 개정판이다. 옌롄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세상 끝에 사람 하나와 씨앗 하나만 남는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를 상상했다고 적는다. 이 질문이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출발점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이 작품이 묻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자연재해와 감염병, 전쟁 같은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최소 조건이 무엇인지 되짚게 한다. 생존의 기술보다 존엄의 태도를 먼저 보게 한다.

옌롄커는 중국 허난성 출신으로 루쉰문학상과 라오서문학상, 프란츠카프카문학상, 홍루몽상 최고상 등을 받은 작가다. 그의 작품은 30여 개 언어로 번역돼 해외에서 200여 종 넘게 출간됐다.

△ '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188쪽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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