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비밀의 책'…CWA 골드대거상 수상작 한국어판
'비밀의 책'은 1659년 로마의 기이한 죽음을 추적하며 교회의 수사와 여성들의 은밀한 연대를 충돌시키는 고딕 스릴러 장편소설이다. 실화 '아쿠아 토파나 사건'을 바탕으로 독약의 비밀과 사라진 기록, 그리고 법이 닿지 못한 삶의 막다른 골목을 함께 좇는다.
죽은 남자들의 시신보다 먼저 드러나는 것은 살아남으려 했던 여자들의 처지다. 이 소설은 살인의 기법보다 탈출구를 잃은 삶을 앞세운다. 죄와 생존이 한 자리에 겹치는 순간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이야기의 무대는 페스트가 휩쓸고 간 뒤의 로마다. 매장 뒤에도 시신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얼굴빛마저 남아 있다는 소문이 번진다. 교회의 지시를 받은 젊은 판사 스테파노는 이 수상한 죽음을 좇다가 흔적 없는 독살과 맞닥뜨린다.
수사는 로마 서쪽 강변에서 약초를 기르는 지롤라마 쪽으로 모인다. 그러나 증인들은 하나둘 입을 다물고, 독 제조법을 적은 '비밀의 책'도 자취를 감춘다. 사건은 범인을 찾는 일에서 누가 왜 그 비밀을 지키려 하는지로 이동한다.
작품은 안나 같은 여성들의 처지를 통해 당시 법과 제도의 빈틈을 보여준다.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날 길은 막혀 있고, 법정도 실질적인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이 틈에서 지롤라마와 여성들의 연결은 범죄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생존 수단으로 읽힌다.
스테파노 역시 단순한 추적자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누이들이 차별받는 모습을 보며 자란 인물로, 수사를 이어갈수록 자신이 따르는 일이 정의인지 체제 수호인지 흔들린다. 평민에게는 가혹하고 귀족에게는 느슨한 법의 이중성도 그의 판단을 압박한다.
소설이 복원하려는 것은 그렇게 지워진 여성들의 목소리다. 역사가 '악녀'라는 이름으로 밀어 넣은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고, 독과 지식, 비밀문서가 어떻게 생존의 언어가 됐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600명 넘는 사망자를 남긴 실제 독살 사건이 이 서사의 밑바탕이다.
안나 마촐라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런던법학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인권·형사사건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역사적 사건을 범죄소설로 다시 쓰는 작업을 이어왔고, 이 작품으로 2025년 CWA 골드대거상을 받았다.
△ 비밀의 책/ 안나 마촐라 지음/ 유소영 옮김/ 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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