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사별, 소멸 이후를 노래하다…장석원 7번째 시집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5월 11일, 오전 09:01

[신간] '우리가 소실되는 풍경'

'우리가 소실되는 풍경'은 모든 정념이 타버린 뒤에도 끝나지 않는 이별의 상태를 붙드는 장석원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타인이자 오래전의 나이기도 한 '너'를 끊임없이 불러내며, 사라짐과 애도, 재생의 이미지를 따라 사랑 이후의 시간을 밀도 높게 더듬는다.

이 시집이 붙드는 감정은 단순한 연애의 상실에 머물지 않는다. 헤어진 상대를 향한 그리움뿐 아니라, 소멸하는 현재와 지나간 시간선에 남겨진 자신까지 함께 돌아보게 한다. '너'와 '나'가 분리되고 겹치며 다시 '우리'라는 감각으로 번지는 구조가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시집의 첫머리에 놓인 '플랑크 타임'은 최소 시간 단위를 끌어와 이별의 감각을 시간과 공간의 경계로 밀어붙인다. 한순간 스치고 사라지는 관계, 동시에 나타났다가 폐기되는 존재의 상태가 여기서 출발한다. 물리학의 언어는 곧 '너와 나'의 생성과 소멸을 다루는 시적 장치로 바뀐다.

2부와 3부에 실린 시편들은 이 감각을 더 육체적인 이미지로 밀고 간다. '나를 불태워줘', '문산', '기체 인간', '폼페이, (그)라(디)바'에서는 타버리는 몸, 절개된 감각, 녹아내리는 풍경이 반복된다. 이별은 관념이 아니라 신체의 통증과 잔해, 불길과 재 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사건처럼 다뤄진다.

[신간] '우리가 소실되는 풍경'

그 과정에서 '너'는 한 사람으로만 고정되지 않는다. 시 속 '너'는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고,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속의 '나'이기도 하다. 타인을 향한 호명과 자기 자신을 향한 회귀가 한몸처럼 겹치면서, 이별의 범위도 사랑과 사별, 한 시절과의 결별까지 넓어진다.

후반부에 가면 시의 태도는 조금 달라진다. 통증을 밀어붙이기보다 거리를 두고 오래 머금는 쪽으로 옮겨 간다. '단자의 리스페리돈'에서 "조금 더 멀어져"야 한다는 문장은 이 시집이 끝내 도달한 감각을 압축한다. 붙드는 대신 받아들이는 쪽으로, 소실을 부정하지 않는 쪽으로 한발 물러선다.

그 변화는 '수색역에서, 1988'에서 더 선명해진다. 비와 얼굴, 돌아보는 장면 같은 비교적 또렷한 서정이 등장하고, 과거의 풍경과 현재의 감각이 한자리에서 겹친다. 장석원은 이 작품을 가장 아끼는 시로 꼽으며, 그날의 '나'를 거기서 다시 만났다고 말한다.

마지막 시편 '폭장'은 시집 전체의 질문을 다시 접어 넣는다. 한때 "살 속의 뼈"와 같았던 '너'가 들어왔다가 빠져나간 뒤, 남는 것은 분골된 몸과 흩어지는 꽃잎이다. 이 장면은 상실의 끝을 말하면서도, 사라진 것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감각을 함께 남긴다.

장석원은 2002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아나키스트', '태양의 연대기', '역진화의 시작', '리듬', '유루 무루', '이별 후의 이별' 등을 펴냈다.

△ 우리가 소실되는 풍경/ 장석원 지음/ 124쪽

[신간] '우리가 소실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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