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 논쟁은 왜 반복되나…가정의 보호자이자 권력의 얼굴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5월 18일, 오전 09:01

'아버지의 역사'는 아버지를 가족 안의 역할에만 가두지 않고, 사랑과 권위가 뒤엉킨 제도로 읽는 역사서다.

'아버지의 역사'는 아버지를 가족 안의 역할에만 가두지 않고, 사랑과 권위가 뒤엉킨 제도로 읽는 역사서다. 고대 철학에서 현대의 남성성 논쟁까지 시야를 넓혀, 부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흔들려 왔는지 장기 흐름 속에서 되짚는다.

책의 중심어는 '아버지'보다 '부성'에 가깝다. 저자는 누가 혈통을 잇고 권위를 행사하며 다음 세대에 무엇을 넘겨주느냐는 질문이 오래도록 부성과 함께 움직여 왔다고 본다. 이 책은 그 물음을 한 시대의 가족문화가 아니라 서구 문명 전체의 구조 변화와 연결한다.

출발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대목에서는 집안의 질서와 정치의 질서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고가 두드러진다. 아버지의 자리는 사적 보호의 공간인 동시에 공동체 윤리를 떠받치는 자리로 놓인다.

이 구도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오면 다른 방향으로 꺾인다. 아버지는 선을 길러내는 존재가 아니라 죄와 결핍의 계보 속에 놓인 존재로 바뀐다. 여기에 헨리 8세와 로버트 필머, 존 로크가 이어지며 부성은 왕권과 복종, 성경 해석을 둘러싼 정치 언어로도 확장된다.

토머스 제퍼슨과 에머슨, 소로를 다루는 장에서는 부성의 무대가 국가와 자유, 경제의 문제로 옮겨 간다. 자기 삶을 스스로 꾸리려는 개인에게도 아버지는 벗어나야 할 구체적 제도였고, 동시에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질서였다. 이 대목에서 책은 자유의 서사 속에도 부성의 그림자가 깊게 남아 있음을 드러낸다.

다윈이 놓인 19세기 가족 장면은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가족은 생계 단위만이 아니라 정서와 기억을 쌓는 장소가 되고, 아이는 거래의 대상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다시 자리 잡는다. 책은 이런 이동이 부성을 돌봄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프로이트를 거치면 문제는 더 내면으로 들어간다. 전쟁의 참혹함과 정신분석의 문제의식이 겹치며 아버지의 권위는 제도 바깥이 아니라 인간 심리 안에서 다시 흔들린다. 마지막에 다다라 밥 딜런이 호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정과 정체성, 남성성의 균열이 문화적 감수성과 함께 더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가 강조하는 지점은 낡은 부권이 약해진 자리에서 새로운 아버지 경험이 더 선명해졌다는 역설이다. 어거스틴 세지윅 "부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여겨지는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한층 더 명확해지고 풍부해졌다는 점은 역설적이거나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 있다"(354~355쪽)고 말했다.

그는 친자 관계와 돌봄의 일상 노동이 실제로 또렷해질수록, 신화와 약속 위에 세워졌던 오래된 부성 개념은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린다고 본다.

'아버지의 역사'는 결국 좋은 아버지의 미덕을 정리하는 책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자리가 왜 보호와 억압, 애정과 통제를 함께 품어 왔는지를 묻는 작업에 가깝다.

△ 아버지의 역사/ 어거스틴 세지윅 지음/ 김재용 옮김/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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