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써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 마주할 때마다 매번 초심자가 되고, 끝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 작가 최은영(42)에게 글쓰기는 늘 그런 ‘백지’ 앞에 서는 과정이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로 타인의 상처를 다정하게 어루만졌던 그가 이번엔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드러냈다.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는 사랑받고 싶었던 유년의 결핍부터 숨겨온 상처와 불안까지 투명하게 펼쳐 보인 가장 솔직한 기록이다.
최 작가는 최근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비밀을 품고 살면 삶이 무거워진다”며 “그 무게를 누군가와 나눴을 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는 치유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최은영 작가(사진=문학동네).
최 작가는 2013년 단편소설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등을 통해 섬세한 감정 묘사와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산문집은 2024년부터 새로 쓴 글과 기존 발표작을 다듬어 엮었다. 등단 13년 만에 소설적 장치를 거두고,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다뤘다. 외모에 대한 강박부터 암 진단이라는 충격적인 경험,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성찰까지 사랑과 상실의 시간을 차분히 되짚는다.
스스로를 ‘패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최 작가는 “글에 힘이 있으려면 절대로 가식적이어서는 안 된다”면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진실을 꺼내놓는 것이 글에 힘을 더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최 작가에겐 어린 시절부터 외모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그는 “뿌리 깊은 곳에 ‘내가 부적절한 존재’라는 무의식이 있어 힘들었다”며 “청소년 시절 외모 스트레스가 극심했지만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내려놓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사람은 외모로만 규정될 수 없고,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스스로를 존중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2024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병원을 오가야 했던 경험도 책에 담겼다. 수술은 잘 마쳤지만, 평생 약을 복용하며 관리해야 한다. 최 작가는 이를 “아픈 기억”이라고 담담하게 고백했다.
◇“우리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게 글쓰기는 타고난 기질이자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최 작가는 “글을 쓸 때는 소외되지 않고 타고난 모습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며 “물고기가 흐르는 물에 풀어지는 기분”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그의 작가적 뿌리는 유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왕복 3시간을 버스로 통학했던 시간이 작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창밖을 보며 멍하니 혼자 생각했던 시간이 작가로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고 돌아봤다.
‘쇼코의 미소’로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부담감도 컸다. 그는 “사람들이 ‘잘 쓴다’, ‘기대된다’고 할수록 언젠가 내게 실망해 등을 돌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었다”며 “결과나 성취를 목표로 글을 쓰는 것이 문학적인 태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밝고 잘사는 모습만 부각되며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기도 하지만, 최 작가의 글은 오히려 ‘우리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는 위안을 건넨다. 그는 “남에게 쉽게 보여주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를 글로 쓸 때 오히려 공감과 위로를 나눌 수 있다”면서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 마음속까지 닿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재 그는 내년 출간을 목표로 장편소설 ‘봄의 사면’을 집필 중이다. 최 작가는 “모두가 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게 곧 인간의 정수”라며 “앞으로도 가장 흔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방식의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