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단어로는 차마 설명할 수 없는, 그냥 김경진"…세계문학상 수상작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5월 25일, 오전 07:07

'유리 조각 시간'은 학창 시절 채팅 사이트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 두 여성이 성인이 되어 다시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유리 조각 시간'은 학창 시절 채팅 사이트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 두 여성이 성인이 되어 다시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작가 성수진은 소설을 매개로 과거와 상처를 다시 읽는 두 인물을 따라가며 청소년기의 불안과 결핍, 연약한 연대를 짚는다.

낯선 곳으로 떠나 새 삶을 시작하려던 간호사 유영은 출국을 앞두고 병원을 그만둔다. 그날 밤 오래 연락이 끊겼던 친구 경진에게서 메일이 오고, 유영을 화자로 삼은 경진의 소설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 끌어올린다.

소설의 한 축은 중학생 시절 유영과 경진, 그러니까 '델'의 만남이다. 얼굴이나 목소리가 아니라 문장으로 누군가를 기억하고 실감하는 경험이 유영에게는 전에 없던 일이었다.

유영의 집에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언니 유경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부모가 오래 숨겨온 그 존재와 기일마다 무너지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자란 유영에게 델은 전혀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인물로 다가온다.

두 사람은 채팅창을 켜둔 채 "반짝이는 것"을 보는 의식을 함께하고, 서로의 결핍을 알아본다. 유영이 다리 난간에 섰던 날 델이 자신이 가진 것을 던져 붙드는 장면은 이 관계의 밀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른이 된 뒤에도 두 사람은 문자와 메일로 관계를 이어가지만 어느 순간 경진은 유영의 부름에 답하지 않는다. 5년 만에 도착한 소설은 다시 연결의 신호이자 불길한 예감의 시작이 된다.

유영은 경진이 보낸 문장을 읽으며 불안했던 시절의 감정과 충만한 울렁거림을 되새긴다. 동시에 병원에 있는 경진을 찾아가며, 예전과 달리 이제는 자신이 전부를 걸어도 경진의 숨과 바꿀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한다.

이야기의 다른 축은 유영과 엄마, 할머니 사이의 관계다. 유경의 죽음 이후 끊어진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 자신을 붙잡아두려는 엄마와의 충돌은 경진을 떠나보내는 시간과 맞물리며 다른 방식의 상처를 드러낸다.

유영은 경진과의 관계를 통해 엄마와 할머니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고, 자기 안에 오래 머물던 유경의 존재도 새롭게 인식한다. 마지막에 손바닥 위에 놓인 초록색 유리 조각은 함께했던 시간과 마모된 상처의 시간을 한데 붙드는 상징처럼 남는다.

△ 유리 조각 시간/ 성수진 지음/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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