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음악이 되고 그림은 시가 되고[문화대상 이 작품]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5월 26일, 오전 05:30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 노래를 많이 작곡하던 작곡가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기악곡을 주로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글로는 다 말할 수 없어서. 문학 이외의 예술이 다 그렇지 않을까 싶다. 무용수는 몸짓으로, 미술가는 선과 색으로.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같은 방향으로 등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간다.

‘추일서정’ 공연 장면 (사진=인아츠프로덕션)
얼마나 멀리 갔을까? 특히 이어폰이라는 개인화된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음악은 주위와의 연결을 과감히 단절시킨다. 이렇게 듣는 경험은 다른 감각의 경험과 무관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인지 음악회에서도 보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하지만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음악의 연결은 매우 중요하다. 관객은 무대를 보며 두 감각을 연결하고, 그렇기에 오디오로 음악을 들을 때보다 더 큰 감흥의 시너지를 경험한다. 또한 후각과 촉각의 도움으로 같은 공간을 지각함으로써 무대의 환상을 공유한다. 그래서 오디오로 듣다가도, 연주 영상을 보다가도, 공연장으로 기꺼이 발걸음을 옮긴다.

요즘 이러한 음악회가 종종 보이곤 한다. 음악과 무대 연출을 함께 고민하고, 다른 분야들과 결합해 총체를 지향하기도 한다. 박상연 연출의 ‘추일서정’(秋日抒情)이 바로 그런 음악회였다. 이 공연은 김광균의 시 9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서정극으로, 지난해 10월 21일 강릉에서 열린 제2회 하슬라국제예술제에서 올려졌고 올해 4월 1일에 서울 GS아트센터에서 재공연됐다.

공연에서는 시 낭송과 함께 ‘목련’과 ‘와사등’을 가사로 하는 작곡가 최우정의 신작 2곡과 클래식, 샹송이 포함된 10곡의 음악이 연주됐다. 여기에 낭송과 연주라는 청각적 전달에 그치지 않고, 추상화된 미디어 아트와 입체적 무대를 통한 시각적 이미지가 결합해 독특한 감흥을 줬다. 이렇게 멀리 달아났던 음악을 불러오고, 서로 등을 돌리고 있던 글과 미술, 춤을 돌려세워 같은 곳을 바라보게 했다. 그렇게 불연속적 예술 장르들이 감각의 연대를 이뤘다.

‘추일서정’ 공연 장면 (사진=인아츠프로덕션)
공연은 배우 김미숙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무대 앞쪽에서 시를 낭송하다가도 음악이 연주될 때면 뒤를 돌아 무대 안쪽을 바라보았다. 배우는 공연자이자 관객이었고, 시는 무대와 객석을 연결하는 목소리가 된다. 베일로 가려진 무대 왼쪽에서 소프라노 이명주는 밝은 조명을 받으며 아폴로와 같이 고결한 소리를 들려주고, 피아니스트 조재혁은 가장 높은 곳에서 서정을 이끈다. 노출된 무대 오른쪽에는 바리톤 사무엘 윤이 목신과 같이 홀로 자유로이 음악을 즐기며 분위기를 바꾸려 하지만, 저 멀리 첼리스트 송영훈은 진심의 목소리로 열기를 가라앉힌다.

이렇게 비대칭으로 나뉜 다섯 영역과 다양한 목소리들은 마치 내면의 층위와도 같았다. 나는 객석에 있었지만 무대에도 있었고, 무대는 나의 밖에 있었지만 내 안에도 있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녹음돼 교감할 수 없는 배우 이제훈의 내래이션은 무대의 서정과 유리됐고, 글자와 숫자가 직설적으로 표기된 일부 영상은 환상적 감흥을 재단하곤 했다.

짐짓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그저 주변을 돌며 배회하는 발걸음에 진실은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안부를 묻는다. ‘추일서정’은 그러한 작품이다.

‘추일서정’ 공연 장면 (사진=인아츠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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