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베큠하셨어요? Did you vacuum?' 포스터 (서울자브종 제공)
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데미아 디 벨레 아르테에서 공부한 유학파로 대형 캔버스에 영혼을 바인딩하던 화가가 개인의 아픔을 딛고 호텔 청소부로 변신했다. 윤희숙 작가가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갤러리 서울자브종에서 선보이는 네 번째 개인전 '베큠하셨어요? Did you vacuum?'은 고단한 생업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낸 독창적인 무대다.
작가는 남편과의 사별 후 생계를 위해 잡은 더티카트와 청소기를 부끄러워하는 대신, 늘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 카메라의 렌즈를 일터로 돌렸다. 헝클어진 객실 침구와 구불구불한 호스 등 매일 마주하는 지루한 노동의 흔적들이 디아섹 액자 속에서 기하학적이고 감각적인 현대 예술로 재탄생했다.
전시장을 메운 작품들은 관객에게 묘한 위로를 건넨다. 하찮게 여겨지기 쉬운 청소라는 행위가 정돈된 침대 모서리와 칼같이 접힌 수건을 통해 마치 하나의 거룩한 종교적 의식처럼 다가온다. 매일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무너진 내면을 한 땀 한 땀 다시 조립해 나갔을 작가의 치열한 숨결이 사진 밖으로 배어 나온다.
윤희숙 'Bedding for me' (서울자브종 제공)
서울자브종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화려한 유화 작업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번 사진 전시는 파격 그 자체"라며 "직업이 바뀌어도 예술가의 시선은 절대 녹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돋보인다"고 전했다.
김성신 문화 평론가는 "이 전시는 단순히 한 화가의 눈물겨운 직업 변경 성공기가 아니다"며 "작가는 자신의 현재를 당당하게 드러내며 늙음과 변화를 멋지게 수용하는 '프라이드 에이징'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나이가 들거나 직장을 잃으면 인생의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곤 한다. 하지만 어떤 자리에서든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 꿋꿋하게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의 행보는, 급격한 변화를 두려워하며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던지는 최고의 선물이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