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km 수로가 만든 시장…15~18세기 중국 상인의 부를 읽다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6월 02일, 오전 09:00

'대운하 시대, 세상을 연결한 부의 통로'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중국 대운하를 따라 형성된 상업 질서와 연결의 구조를 추적한다. 저자 조영헌은 공급망 붕괴와 지정학 재편이 겹친 지금, 대운하를 과거 유산이 아니라 권력·경제·정보를 움직인 시스템으로 다시 읽는다.

'대운하 시대, 세상을 연결한 부의 통로'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중국 대운하를 따라 형성된 상업 질서와 연결의 구조를 추적한다. 저자 조영헌은 공급망 붕괴와 지정학 재편이 겹친 지금, 대운하를 과거 유산이 아니라 권력·경제·정보를 움직인 시스템으로 다시 읽는다.

남쪽의 경제력과 북쪽의 정치권력이 맞물린 수로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제국을 작동시키는 장치로 제시된다. 책은 분절된 지역 경제가 하나의 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대운하가 동아시아를 지배한 또 하나의 '세계 시스템'이었다는 문제의식을 전면에 놓는다.

책의 중심에는 길 위를 오간 상인들이 있다. 국가는 세금을 실어 나르는 통로를 운영했지만, 상인들은 그 위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세우고 정보를 모으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저자는 권력과 거리를 조절하는 생존 전략, 장거리 유통업의 확대, 지역 상계의 재편을 함께 묶어 대운하 시대 상업의 문법을 짚는다.

휘주 상인처럼 유통을 넘어 금융과 지역 사회까지 영향력을 넓힌 주체들도 이 흐름 속에 놓인다. 상인의 역할이 컸는데도 법적 안전망은 취약했고, 제대로 된 상법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했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상업 분쟁의 피해가 상인에게 집중되고 소송이 급증한 배경을 통해, 번성과 불안이 함께 간 시대의 얼굴을 드러낸다.

17세기 상인들의 기부는 평판과 지배 구조를 묶는 장치였다. 운하의 말뚝을 제거하거나 물에 빠진 이를 구조하는 구생선 운행에 기부한 사례는 사회적 신뢰와 상업 활동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보여준다.

주희·관우·마조 같은 인물이 상업의 신으로 숭배된 장면도 실린다. 회관과 서원, 사당을 오간 여러 계층의 움직임은 상업의 메시지와 상인의 영향력이 도시 사회로 번져간 과정을 보여준다. 1488년 절강성 영파에 표류한 최부의 여정도 이 책의 중요한 사례다. 최부 일행이 관선에 올라 강남의 도시와 운하 풍경을 기록한 '표해록'은 조선인이 목도한 대운하의 교통망과 현장감을 전한다.

책은 북경이 남방의 해안과 연결된 1800킬로미터 대운하가 맞닿도록 인공적으로 설계된 공간이었다고 본다. 이 수로는 강남과 북경을 잇는 조운로를 넘어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매개물로 기능했다.

조영헌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홍익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한다. 중국 근세 대운하 상인과 북경 수도론, 동아시아 해양사와 대륙사를 함께 살핀 연구 이력이 책의 시야를 받친다.

책이 끝내 남기는 질문은 연결을 누가 설계하고 통제하느냐다. 물류와 인프라가 국가와 기업의 생존 변수로 떠오른 시기에, 바다가 아닌 내륙 수로가 만든 질서를 더듬어 오늘의 공급망과 지정학을 다시 보게 한다.

△ '대운하 시대, 세상을 연결한 부의 통로'/ 조영헌 지음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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