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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3일,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거장 앤서니 퀸이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 향년 8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그의 타계 소식은 전 세계 영화계와 팬들에게 큰 슬픔을 안겼다.
1915년 멕시코 치와와에서 가난한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부터 소년 가장이 되어 구두닦이, 신문팔이, 권투선수 스파링 파트너 등을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 본래 건축가를 꿈꿨으나 학비를 벌기 위해 찾아간 배우학원에서 우연히 연기의 매력에 눈을 떴고, 1936년 영화 '평원아'와 '가출옥' 등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커리어 초기에는 인디언이나 악역 등 제한적인 역할만을 맡으며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거친 남성적 에너지를 바탕으로 점차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마침내 1952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혁명아 자파타'에서 주인공의 형인 치로 역을 맡아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1956년에는 영화 '열정의 랩소디'에서 화가 폴 고갱 역을 맡아 단 8분이라는 짧은 출연 시간에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며 두 번째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의 정점은 단연 1964년작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자유분방하고 낙천적이며 대지의 야성적인 생명력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 역은 오직 그만이 소화할 수 있는 독보적인 캐릭터였다. 해변에서 양팔을 벌리고 춤을 추던 그의 모습은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며 자유인의 상징이 됏다.
이 외에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명작 '길'에서 차력사 잠파노를 완벽히 연기했다. 또한 '아라비아의 로렌스', '노트르담의 꼽추', '25시' 등 수많은 걸작 속에서 왕, 교황, 농부, 인디언 등 한계가 없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그가 스크린에 쏟아부었던 뜨거운 예술적 혼과 강렬한 에너지는 영원한 빛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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