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이론'은 한국의 딸기밭 비닐하우스에서 7년째 숙식하며 일하는 미얀마인 여성 노동자 샤빼의 편지를 따라 여성 이주 노동자의 삶을 파고든다.
'딸기 이론'은 한국의 딸기밭 비닐하우스에서 7년째 숙식하며 일하는 미얀마인 여성 노동자 샤빼의 편지를 따라 여성 이주 노동자의 삶을 파고든다. 김숨 소설가는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보파를 향한 호명과 '딸기'라는 매개를 통해 노동, 계급, 전쟁, 자궁, 언어의 문제를 한 통의 장편소설로 엮었다.
샤빼와 보파는 같은 딸기밭에서 일하고 같은 방을 쓰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미얀마어와 크메르어, 서툰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서 남는 것은 '프로미스' 같은 몇 마디뿐이다. 소설은 이 막힌 언어를 정면에 세우고, 끝내 닿을지 알 수 없는 편지의 형식으로 두 사람 사이의 거리와 고립을 드러낸다.
샤빼의 편지는 보파의 일기장과 다른 동료들의 사연, 떠난 노동자들의 흔적을 한 줄씩 더해 간다. 보파는 샤빼보다 먼저 한국에 와 딸기밭을 떠나지 못한 미등록 이주 노동자로 놓여 있고, 샤빼는 그런 보파를 향해 계속 말을 건넨다. 서로의 언어를 모른 채 한 방에서 7년을 보낸 시간은 이방인 사이의 침묵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소설에서 딸기는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노동과 이동, 착취를 묶는 중심 축으로 놓인다. 딸기는 돈이 되고 그 돈은 국경 너머로 터져 나가며, 딸기를 따는 손은 다른 노동의 현장으로 넝쿨처럼 뻗어 간다. 길 건너 비닐하우스의 깻잎밭, 돼지와 닭이 갇힌 축사, 기계와 쇳물 앞에 선 손들이 모두 샤빼의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그 확장은 딸기밭 바깥의 장소와 사람들을 한데 묶는다. 미얀마 강가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엄마의 손, 죽어 가며 온기를 찾는 손, 커다란 기계에 끼인 손이 한 줄로 이어지며 딸기밭의 노동을 더 넓은 생존의 문제로 바꾼다. 샤빼가 보파에게 건네는 말은 한 사람의 하소연에 그치지 않고 같은 땅에 흩어진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함께 호명한다.
이 소설은 여성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자궁, 낙태권, 체류 자격, 계급의 문제까지 밀고 나간다. 샤빼는 '낙태권'을 떠올리고, 보파를 '불법체류 노동자'로 부르는 현실을 마주하며, 갈색 피부의 여자애들 안에서도 더 낮은 계급이 생기는 구조를 본다.
한국어 교재에 '아름답다'는 없고 '단무지'가 더 쓸모 있다는 대목, '모름다움'이라는 새 단어를 만드는 장면도 이 세계의 언어 감각을 드러낸다.
생명이 허락되지 않는 땅의 풍경도 선명하다. 밤새 불을 켜 두는 딸기밭과 양계장, 몸을 돌릴 수 없는 축사, 부유한 나라의 늙고 병든 남자들에게 자식을 낳아 주기 위해 거래되는 자궁의 이미지가 한 흐름으로 놓인다. 여기에 미얀마의 내전과 쿠데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까지 겹치며 샤빼의 질문은 왜 생명이 없는 세상에서 생명이 자꾸 태어나는지로 향한다.
김숨은 일본군 '위안부', 디아스포라, 조선소 노동자, 시각장애인의 삶을 소설로 옮겨왔다. '딸기 이론'은 그 흐름에 여성 이주 노동자의 목소리를 새로 더하며,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딸기밭에서 삶의 의미를 어떻게 붙들 것인지 묻는다. 이 소설이 남기는 질문은 노동의 현장과 국경 바깥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생존을 향한다.
△ '딸기 이론'/ 김숨 지음/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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