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시작하는 치매 예방?…부드러운 조명·평평한 바닥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6월 08일, 오전 09:01

'뉴로테리어'는 치매를 의료와 간병의 사후 대응으로만 보지 않고, 40~50대부터 바꿀 수 있는 집과 동네의 공간 설계 문제로 끌어온다.

'뉴로테리어'는 치매를 의료와 간병의 사후 대응으로만 보지 않고, 40~50대부터 바꿀 수 있는 집과 동네의 공간 설계 문제로 끌어온다. 저자 손혜주 중앙대 핵의학과 교수는 조명·색채·가구 배치 같은 일상 환경의 변화가 뇌의 회복 탄력성을 지키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짚으며 집 안 처방에서 '뇌세권'까지 공간 전략을 펼친다.

알츠하이머 병리는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쌓이고, 중년의 생활 환경이 노년의 인지 기능 격차를 벌릴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책의 출발점이다. '뉴로테리어'라는 말은 뇌 건강과 인테리어를 묶어 치매 논의를 병원 밖 일상 공간으로 옮긴다. 저자는 치매를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되는 변화로 보고, 그 흐름 한가운데 놓인 40~50대의 선택을 먼저 들여다본다.

뇌를 지키는 힘으로 책이 내세우는 개념은 '회복 탄력성'이다. 저자는 이를 치매 병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인지 기능을 버티게 하는 힘으로 설명하면서, 숲처럼 얽힌 신경망이 일상의 공간에서 단련될 수 있다고 본다. 영국에서 50대 이상 1만여 명의 뇌 노화 궤적을 추적한 연구를 끌어와 소득보다 주거 자산이 노년의 건강과 더 깊게 맞물릴 수 있다고 짚는 대목도 여기에 놓인다.

공간이 중요한 까닭은 노화가 먼저 의지와 주도적 행동 능력을 흔들기 때문이다. 책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이 달라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치매 환자와 노년층이 왜 평범한 소음과 복잡한 실내 배치에도 쉽게 피로해지는지 설명한다. 그래서 뇌를 위한 디자인의 출발점을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로 잡고, 어지러운 물건과 생활 소음, 불필요한 자극부터 덜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대비, 색상, 패턴, 조명, 시각 연결성, 안전한 출입문과 주방 설계 같은 항목을 묶어 뇌 친화적 공간의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중년의 예방 단계부터 정상 노화, 치매 단계까지 뇌의 나이에 맞춘 3단계 처방도 함께 내놓는다. 벽지 색을 바꾸고 가구를 재배치하는 수준의 작은 조정이 인지 부하를 낮추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책의 실천 축이다.

책은 집 안 해법에만 머물지 않고 스웨덴 왕실과 이케아가 함께 만든 주택 '실비아보', 프랑스와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의 치매 친화 마을 사례로 시야를 넓힌다. 부부가 함께 살다 한 사람에게 치매가 찾아와도 헤어지지 않도록 설계한 집, 소규모 모임과 큰 활동을 함께 감당하는 커뮤니티 공간, 순환형 동선과 표지판 같은 장치가 대표 사례로 나온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주거 공간을 넘어 동네의 조건까지 묻는다. 차 키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20분 생활권, 뇌가 이해하기 쉬운 도로망, 안전한 횡단보도와 버스 정류장, 벤치와 식물 내비게이션 같은 요소를 묶어 '뇌세권'의 기준을 제안한다. 나이 들어 감각이 무뎌져도 스스로 걸어 나가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인가가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손혜주는 KAIST 출신 뇌의학자로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알츠하이머 치매를 연구해왔다. 수만 건의 뇌 PET 영상 판독 경험과 '알츠하이머 회복탄력성' 연구를 바탕으로 뇌과학과 공간 디자인을 함께 다루는 시선을 이 책에 모았다.

책이 내놓는 해법은 거창한 공사보다 눈부심을 줄인 조명, 턱을 없앤 바닥, 가족을 향하도록 각도를 튼 의자처럼 작고 구체적인 변화에 가깝다. 치매 친화 공간이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설계라는 주장도 여기서 나온다. '뉴로테리어'는 치매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공간을 먼저 바꾸는 문제로 다시 보자고 묻는다.

△ '뉴로테리어'/ 손혜주 지음/ 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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