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지로 분한 도널드 덕. (출처: Walt Disney Pictures for the US government, 1942,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34년 6월 9일, 대공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던 미국 극장가에 엉뚱하고 성질 급한 오리 한 마리가 등장했다. 바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인기 캐릭터 중 하나인 '도널드 덕'(Donald Duck)이다.
도널드 덕의 스크린 데뷔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가 제작한 '실리 심포니'(Silly Symphony) 시리즈의 단편 애니메이션 '현명한 작은 암탉'(The Wise Little Hen)을 통해서였다. 훗날 미키 마우스와 함께 세계 대중문화의 상징이 될 도널드 덕'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이다.
당시 디즈니의 간판스타였던 미키 마우스는 지나치게 모범적인 성격 탓에 성격적 변화를 주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이에 디즈니는 결함투성이인 캐릭터를 구상했다. 푸른 세일러복과 모자를 쓰고 바지는 입지 않은 기괴한 패션, 그리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쇳소리 섞인 목소리를 가진 오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도널드 덕의 첫 역할은 꾀병을 부리는 게으름뱅이였다. 암탉이 옥수수를 심고 수확하는 힘든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도널드는 복통을 핑계 대며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결국 마지막에 옥수수 요리를 나누어 먹는 자리에서 제외되어 후회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대중은 조그만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온몸을 파르르 떨며 꽥꽥거리는 이 포악스러운 오리에게 격렬하게 환호했다. 현실에 치여 짜증과 화를 억누르고 살던 대공황기 사람들은 도널드의 통제 불능한 분노 표출에서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성우 클래런스 내시가 완성한 독보적인 오리 목소리도 신의 한 수였다.
이후 도널드 덕은 단숨에 주연급으로 격상됐다. 같은 해 8월 '고아의 혜택'(Orphan's Benefit)에서 본격적으로 트레이드마크인 화풀이 연기를 선보이며 미키 마우스의 인기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 엉뚱한 오리는 완벽주의 서사 중심이던 애니메이션의 판을 뒤흔들었다. 또한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을 대변하는 안티히어로 캐릭터의 시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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