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1963년의 절망을 다시 쓰다…'사건' 전면 개정판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6월 09일, 오전 09:01

'사건'은 아니 에르노가 직접 겪은 임신 중절 경험을 사회적 자서전의 형식으로 밀어붙이며, 오래 숨겨졌던 여성의 현실을 기록한다. 윤석헌이 옮긴 이번 판본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4번으로 나왔다.

'사건'은 아니 에르노가 직접 겪은 임신 중절 경험을 사회적 자서전의 형식으로 밀어붙이며, 오래 숨겨졌던 여성의 현실을 기록한다. 윤석헌이 옮긴 이번 판본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4번으로 나왔다.

화자는 성병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순간 불현듯 1963년 10월로 되돌아간다. 한 남자 학생과 관계를 맺은 뒤 임신 사실을 알아차린 그는 일주일 내내 생리가 시작되기만을 바라던 절망의 시간을 다시 통과한다.

그가 맞닥뜨린 것은 개인의 불안만이 아니다. 자유연애를 지지하고 여성 인권에 민감하던 친구들조차 임신 중절을 예외적 일탈로 낙인찍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임신과 중절은 곧 신분 추락과 학업 실패의 공포로 이어진다.

결국 화자는 아무도, 심지어 제도마저 보호하지 않는 상황에서 최후의 방법을 택한다. 법이 금지하고 사회가 동조해 온 '사건'이 한 여성의 몸과 삶을 어떻게 압박하는지 서사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드러낸다.

책은 이 경험을 숨겨야 할 사적인 고백으로 다루지 않는다. 화자는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고 적으며, 직접 겪은 일을 끝까지 기록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에 가려 두는 데 기여하게 된다고 밀어붙인다.

에르노의 문장은 분노나 고통의 서정에 기대지 않고 당시의 감각을 복원하는 데 집중한다. 약사의 질문, 탐침관이 담긴 대야 옆의 빗처럼 멈춰 선 장면들이 호출되며, 글쓰기는 격정을 과장하는 대신 진실의 징표를 붙드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 작품은 계급과 권력, 가부장제가 한 개인의 육체와 기억에 남긴 흔적까지 함께 파고든다.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에르노의 문제의식이 응축된 대표작으로, 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레벤느망'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번 세계문학전집 판본은 기존 '쏜살 문고' 판본을 전면 개정하고 작품 해설, 작가 연보, 각주를 더했다. 에르노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작품의 맥락을 짚는 장치가 되고, 다시 읽는 독자에게는 글쓰기의 층위를 더 또렷하게 보여준다.

'사건'이 남기는 질문은 과거의 한 장면에 머물지 않는다. 임신 중절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경험이 어떻게 침묵당하는지, 그리고 그 침묵을 누가 어떤 언어로 기록할 수 있는지를 지금형으로 묻는다.

△ '사건'/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120쪽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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