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그리는 세상에서 카메라 렌즈만으로 사물 본질 담다"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6월 09일, 오후 03:28

구본창(b. 1953) 〈컬렉션 18〉 2019 Archival pigment print 124 x 93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인공지능(AI)이 그림을 뚝딱 그려내는 첨단 디지털 시대에, 오직 사람의 눈과 카메라 렌즈만으로 사물의 숨겨진 매력을 붙잡은 특별한 사진전이 열린다.

국제갤러리는 9일부터 7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K1, K2 전시장에서 사진 기획전 '진동하는 사물들(Objects in Oscillation)'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 사진작가 9명이 참여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저마다의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낸 정물 사진들을 한자리에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구본창 작가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가공하거나 인공지능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라며 "작가들이 오랜 시간 대상을 바라보며 카메라의 광학 기술로만 완성한 진솔한 작품들을 통해 물건들과 깊이 교감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구 작가는 내용물이 빠져나간 빈 상자를 촬영한 자신의 대표작 '오브제' 연작도 함께 공개한다.

조선희(b. 1971) 〈Black Imago 170823〉 2025 Archival pigment print 100 x 75 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전시장은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기법으로 가득하다. 정희승 작가는 수학적인 그리드 위에 물건들을 배치해 우연과 필연의 관계를 질문하고, 조성연 작가는 도심에서 주운 콘크리트 조각이나 식물 잔해로 새로운 생명력을 표현한다. 김수강 작가는 물감을 바르고 물에 씻어내는 '검프린트' 기법으로 따뜻한 회화적 느낌을 냈으며, 김경태 작가는 초점이 선명한 부분만 수백 장 합성하는 방식으로 정밀한 너트 표면을 보여준다.

여기에 조선 시대 책거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박찬우, 설탕으로 만든 가짜 보석으로 인간의 욕망을 풍자한 구성연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아울러 전쟁의 아픔과 잊힌 역사를 복원한 정정호, 시들어가는 꽃과 과일에서 새로운 미적 가치를 발견한 조선희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번 전시는 화려한 디지털 기술에 가려져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날로그 사진 본연의 가치와 묵묵한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준다. 가만히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저마다의 이야기로 숨 쉬고 있는 사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한 뜻깊은 기회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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