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은 꽃다발이 아닌 '존재' [e갤러리]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6월 12일, 오전 10:46

권상록 ‘선물’(2024 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첫눈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미래형 전투복을 장착한 두 인물만이 간신히 구분될 뿐이니. 하지만 좀 더 시선을 키우면 이내 예상치 못한 로맨틱한 장면이 눈에 꽂히는데. 한쪽 무릎을 꿇은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꽃다발을 안긴 순간 말이다.

이 장면까진 아니어도 말이다. 혹시 이 인물, 이 배경이 낯설지 않다면 진정 ‘게임의 고수’일 거다. 2000년대 초반 MMORPG가 펼친 가상세계, 그중 ‘샤이닝로어’의 잔상을 끌어낸 것이라니까. ·

작가 권상록(35)은 디지털 ‘유적’을 소재로 작업한다. “데이터가 소실되고 그 이면에 남은 상실의 감각을 회화로 더듬어간다”는데. 영원할 거라 여기지만 끝내 사라져버리는 디지털 데이터의 속성이 개인의 기억까지 휘발한 그 지점을 찾아간다는 거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지금의 누군가에게 과거에 묻힌 가상의 시공간을 되돌려준다고 할까.

그렇다고 세세하게 데이터 속 인물·행위를 묘사하려 들지 않는다. 이젠 풍경이 돼버린, 그러니까 “주관이 관여하지 못하게 된 세계 속 풍경”을 꺼내놓을 뿐이라고 했다. ‘선물’(2024)은 그중 한 풍경이다. 선물은 꽃다발이 아닌 ‘존재’라는 것을 이렇게 에둘렀나 싶다.

6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아트사이드갤러리서 곽지수·한의도와 여는 3인전 ‘토탈 리콜’(Total Recall)에서 볼 수 있다. 1990년대 동명 영화가 예견했던 상상력이 지금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현대인의 정체성으로 살핀 세 작가의 고민과 작업을 꺼냈다. 캔버스에 유채, 72×90㎝.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권상록 ‘같은 곳에서’(2026), 캔버스에 유채, 117×59㎝(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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