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용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최근 뉴스1과 인터뷰에서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의 세계적 위상을 높인 일대 사건"이라고 밝혔다 . © 뉴스1 권현진 기자
한국문학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글로벌 주류 문학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은 번역이 뒷받침된 결과다.
문학은 국가 간 경계를 허무는 가장 깊은 사유의 그릇이며, 번역은 그 그릇을 세계에 전달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한국적 정체성을 보편적 서사로 치환하는 번역은 K-컬처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 요소기도 하다.
뉴스1은 한국문학 해외 진출을 진두지휘하는 전수용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최근 만났다. 이화여대 영문과 명예교수이자 번역가 및 평론가로서 깊은 학문적 토대를 갖춘 전 원장은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과 'AI와의 공진화'를 화두로 던지며 번역원의 대전환을 이끌고 있다.
전 원장과 마주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번역원 및 전문 번역가 양성 등의 비전에 관해 들어봤다.
"이젠 '메이드 위드 코리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번역원 출범 30주년이다. 지난 성과에 대한 자평과 향후 30년의 비전은.
▶지난 30년간 44개 언어권에서 2404종의 한국문학을 해외에 선보였다. 1600여 명의 번역가를 양성했고, 그 축적된 노력이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본다. 향후 30년의 비전은 '세계가 즐기는 모두의 한국문학'이다. 임기 내에 번역대학원대학교를 성공적으로 개교하고, 한국문학이 세계 시장에서 하나의 확고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담론 형성과 네트워크 강화의 초석을 반드시 다져놓겠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현장에서 체감하는 한국문학 위상 변화는.
▶노벨상 수상은 한국문학의 세계적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인 일대 사건이다. 수치로도 증명된다. 번역원이 지원해 출간된 직전 5개년 작품의 해외 판매 부수를 조사한 결과, 2024년 총 판매량은 120만 부를 기록했다. 전년도 52만 부 대비 130%나 폭증했다. 민간 주도의 번역출판 및 교류 지원 신청도 급증하고 있다. 해외 출판사의 번역 지원 신청은 2023년 281건에서 2025년 383건으로, 해외교류 공모는 127건에서 167건으로 각각 늘었다.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시장의 확고한 수요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문학의 열풍을 일시적 현상이 아닌 '안정적 흐름'으로 만들기 위한 핵심 전략은 무엇인가.
▶결국 구조를 튼튼하게 하는 게 관건이다. 과거에는 '우리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공급자 관점이었다면, 이제는 '해외 시장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같이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메이드 위드 코리아'(Made with Korea)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민간 지원을 단발성이 아닌 중장기 체계로 고도화하고, 민간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고전과 근현대 주요작품을 번역원이 기획해 소개하려 한다. 무엇보다 전문 번역 인력의 체계적 양성이 필수적이기에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중점 과제로 추진 중이다.
전수용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최근 뉴스1과 인터뷰에서 "번역대학원대학교를 통해 시대에 변화에 맞춘 번역 전문가들을 배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뉴스1 권현진 기자
"번역대학원, 번역가의 위상 제고와 활동 영역 확장의 발판이 될 것"
-올해 신설된 '한국문학 해외진출 패키지 지원사업'은 기존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기존에는 해외 출판사를 주 대상으로 개별 지원을 해왔다면, 이 사업은 국내 출판사와 에이전시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저작권 계약부터 홍보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며, 최대 2개년 동안 과제당 5000만 원에서 2억 원까지 투입한다. 단순히 양적 확대를 넘어 해외 베스트셀러 배출과 국제문학상 수상을 목표로 하는 질적 도약이 핵심이다. 민간의 기획 및 실행 네트워크 역량을 강화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생적 기반을 조성하고자 한다.
-순수 문학 외에 SF, 웹소설 등 '장르 문학'에 대한 지원 비중은 어떻게 가져갈 계획인가.
▶장르 문학에 대한 번역 지원을 인위적으로 늘리기보다는, 시장의 흐름과 작품의 질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최근 SF나 웹소설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지원과 성과도 뒤따르고 있다. 실제로 올해 미국 로커스상 번역 소설 부문 후보에 오른 한국 작품 4편이 모두 번역원의 지원을 받은 작품들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문학적 가치가 충분하고 해외 시장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좋은 작품이라면 앞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27년 설립 예정인 '번역대학원대학교'가 번역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는가.
▶그간 번역아카데미는 학위를 줄 수 없어 인재들이 전문 인력으로 진로를 설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번역대학원대학교를 통해 석사 학위 과정이 도입되면 수료생들이 문화콘텐츠 전문 번역가로서 공식 인증을 받게 된다. 이는 번역가의 직업적 위상을 높이고, 연구자나 국제문화교류 기획자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한국어와 함께 7개 언어(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러시아어·중국어·일본어) 전공을 운영하며 AI 윤리와 디지털 역량을 포함한 통합 커리큘럼을 통해 시대 변화에 맞춘 번역 전문가를 배출할 계획이다.
전수용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최근 뉴스1과 인터뷰에서 "번역 분야에서 인간과 AI를 대결 구도로 보시는 시각은 지양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 뉴스1 권현진 기자
"번역원, AI 배척하기보다 '공진화'하는 전략 택하고 있어"
-최근 AI 번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인간 번역가와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인간과 AI를 대결 구도로 보는 시각은 지양해야 한다. 최근 AI 번역 결과물이 높게 평가받은 실험도 있었으나, 문학 번역은 단순한 언어 치환이 아니다. 원문과의 정합성, 한국적 정서와 서사의 맥락을 살리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번역원은 AI를 배척하기보다 '공진화'(Co-evolution)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교육 과정에 AI 기술 활용과 포스트에디팅 실습을 포함해, 번역가가 기술을 도구 삼아 텍스트 기획자이자 문화 중개자로 역할을 확장하도록 도울 것이다.
-번역가들의 처우 개선과 저작권 보호에 대한 요구가 여전히 높다. 실질적인 대책이 있는가.
▶번역가들이 안정적으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매년 간담회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번역가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 국내외 체류 지원 항목을 반영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번역료 인상이다.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기존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처우 퇴보와 같다. 문학 번역이 고도의 창작 작업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번역료 인상을 긴밀히 논의 중이다.
☞ 전수용 한국문학번역원장은.
1954년생.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영문학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경희대와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학과 번역 분야의 전문가이자 교육자로 활발히 활동했다. 번역서로 '켈트신화와 전설' '범죄소설' 등이 있다. 특히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 솔 벨로의 소설 '험볼트의 선물'을 번역한 공로로 지난해 제19회 유영번역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및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24년 8월 한국문학번역원장에 임명됐다. 임기는 3년이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