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에서 피어난 발레리노, 성공 너머 희생을 그리다[문화대상 이 작품]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6월 16일, 오전 05:22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에선 광부의 아들이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감동적인 성공담으로 끝난다면, 뮤지컬은 빌리가 로열 발레학교에 합격해 고향을 떠나는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 두 작품의 결말은 같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매듭지으며, 각기 차별화된 주제 의식을 강조한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한 장면(사진=신시컴퍼니)
‘빌리 엘리어트’는 1980년대 중반 영국을 배경으로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를 통해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석탄 산업이 쇠퇴하며 탄광이 문을 닫기 시작한 가운데, 탄광 노동자인 아버지와 형의 눈에 발레는 ‘남자가 할 일이 아닌’ 낯선 세계였고, 생존이 위협받는 현실 속 ‘철없는 투정’이었다.

가족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할 상황에 놓인 빌리가 답답함과 분노를 춤으로 표출하는 대목이 뮤지컬의 대표 장면인 ‘앵그리 댄스’다. 절망과 분노가 폭발하는 이 장면은 단순한 사춘기의 반항을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사회적 기준에서 ‘조금 다른’ 존재였던 마이클은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빌리를 인정하고 그의 곁을 지킨다. 실제로 1984~1985년 영국 광부 대파업 당시, 거친 탄광 노동자들과 사회적 소수자가 연대했던 역사적 사실은 뮤지컬이 선택한 결말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공동체는 연대 기금을 모으고 지지 활동을 펼치며 고립된 광부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뮤지컬의 또 다른 축은 가족의 희생이다. 빌리의 재능과 의지를 확인한 아버지는 결국 아들의 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파업으로 임금이 끊겨 오래된 피아노마저 땔감으로 사용해야 하는 형편 속에서도, 그는 아들 토니의 반대와 동료들의 ‘배신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다시 탄광으로 향한다. 어두운 막장으로 내려가는 승강기에 다른 광부들과 함께 몸을 싣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먹먹한 울림을 남긴다.

이렇듯 뮤지컬은 개인의 독보적인 성취보다 그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주변의 ‘관계들’을 조명한다. 영화가 빌리의 화려한 ‘비상’에 주목했다면, 뮤지컬은 그를 기꺼이 떠받쳐 준 ‘사람들’을 비춘다. 영화의 키워드가 ‘성공’이라면, 뮤지컬의 키워드는 ‘연대’인 셈이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각색의 수준을 넘어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한다.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은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라, 빌리의 성장을 뒷받침한 연대와 희생에 바치는 따뜻한 헌사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가장 큰 미덕은 개인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데 머물지 않고, 빌리라는 예외적인 인물을 통해 공동체의 역할을 질문한다는 점에 있다. 누군가의 도약은 결코 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가 외면한 약자들이 때로는 가장 먼저 연대의 손길을 건넨다는 엄연한 진실을 ‘빌리 엘리어트’는 마지막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묵직하게 붙들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5년 만에 네 번째 시즌으로 재연 중이며, 4대 빌리는 김승주·박지후·김우진·조윤우가 맡았다. 내달 26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에서 공연한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한 장면(사진=신시컴퍼니)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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