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한국전쟁의 그늘은 여전…'아코디언'은 현재진행형 이야기"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6월 17일, 오후 04:23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그 시대가 남긴 상처와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10년 만에 장편소설 ‘아코디언’으로 돌아온 천명관(62) 작가는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우리 안에는 고착된 이데올로기와 진영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이를 이용해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아코디언’은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195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거리로 내몰린 앵벌이 아이들의 생존과 연대를 그린 작품이다. 피난길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 고아가 된 ‘동이’를 중심으로, 앞을 보지 못하지만 맑은 목소리를 지닌 ‘연이’, 두 다리로 걷지 못하지만 뛰어난 지혜를 가진 ‘거북이’ 등 상처 입은 아이들이 서로 보듬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천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는 폭력과 착취, 불평등 같은 현실의 부조리를 다뤘다”며 “리얼리즘을 강조하기 위해 환상적인 요소는 최대한 절제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류는 언제나 타인을 지배하고 착취하려는 속성과 그 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 의지가 공존해왔다”면서 “‘아코디언’에도 그런 인간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담았다”고 부연했다.

동이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낡은 아코디언 한 대다. 엄마의 풍금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그 악기 앞에서 동이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다. 동이가 아코디언을 메고 연이와 함께 노래하는 순간 구걸은 거리 공연으로 변모한다. 천 작가는 “아코디언은 동이가 바라는 세계이자,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소설에는 ‘목포의 눈물’ 등 당시 유행가가 등장하며 인물들의 삶과 시대를 잇는 매개 역할을 한다. 천 작가는 “노래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떠올리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이 소설은 그 시대의 노래에 바치는 헌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 순간 ‘공감’은 사라지고 ‘선망’이 그 자리를 대신한 시대가 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천 작가는 “재벌들의 모임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하위 계층의 삶은 점점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공감이 사라지면서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연결 고리도 점차 희미해지는 느낌”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작품은 2016년 발표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2012년 창비 블로그에 ‘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작품을 대대적으로 개작해 책으로 묶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렸다. 천 작가는 “개작을 하다 보니 새로 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며 “내가 쓴 소설 가운데 가장 지난한 과정을 거쳤고, 유난히 힘든 작업이었다”고 돌아봤다.

천 작가는 소설 ‘고래’로 2023년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비록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 문학의 국제적 위상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천 작가는 “부커상은 내 인생에서 재밌는 해프닝이었다”며 웃어 보였다.

2022년 누아르 영화 ‘뜨거운 피’를 연출하며 영화감독과 소설가를 오가던 천 작가는 앞으로도 소설 집필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그는 “‘마지막에는 소설을 쓰며 남은 삶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며 “앞으로도 현실의 부조리를 담은 소설을 계속 써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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