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항공 9편 '세인트 엘모의 불 사건' 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6월 24일, 오전 06:00

'세인트 엘모의 불' 현상이 발생한 영국항공 9편 상상 이미지. (출처: Anynobody,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1982년 6월 24일 밤, 승객과 승무원 263명을 태우고 인도양 상공 11000m를 비행하던 영국항공 9편(보잉 747-200) 조종실 창문에 기이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마치 정전기 유도 현상인 '세인트 엘모의 불(St. Elmo's Fire)'처럼 푸르스름한 빛이 기체를 감싸 안았다.

동시에 객실에는 매캐한 유황 냄새와 함께 연기가 차올랐고, 엔진 주변은 비정상적인 발광 현상으로 밝게 빛났다. 조종사들이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재앙이 닥쳤다. 4번 엔진이 꺼진 것을 시작으로 단 몇 분 만에 4개의 엔진이 모두 멈춰 버린 것이다. 거대한 점보기가 순식간에 동력을 잃은 거대한 글라이더로 변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기상 레이더에는 아무런 기상 악화 징후가 잡히지 않아 조종사들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암흑 속에서 산소마스크가 떨어지자 승객들은 유언을 작성하며 공포에 떨었다.

조종사들은 절박하게 엔진 재시동을 시도하며 자카르타 공항으로 회항을 결정했다. 비행기가 자바섬의 높은 산맥에 부딪히기 직전인 4100m 고도까지 떨어졌을 때, 마침내 엔진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낮은 고도로 내려오면서 기체를 가두었던 미지의 물질이 씻겨 내려간 덕분이었다.

화산재 마찰로 인해 조종실 앞 유리가 완전히 불투명해져 앞이 보이지 않는 극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계기에만 의존해 자카르타 공항에 기적적으로 안전하게 착륙했다. 탑승객 전원이 상처 하나 없이 생존한 완벽한 기적이었다.

사후 조사 결과, 비행기가 통과한 곳은 사건 직전 폭발한 인도네시아 갈룽궁 화산의 미세한 화산재 구름 속이었다. 화산재가 기체와 마찰하며 세인트 엘모의 불같은 정전기 발광을 일으켰고, 엔진 내부로 들어가 녹아내리면서 공기 흐름을 막아 시동을 꺼뜨린 것이 원인이었다. 이 사건은 항공 역사상 화산재의 위험성을 최초로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이후 전 세계적인 화산재 정보 센터(VAAC)가 설립되는 결정적 바탕이 됐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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