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작가 리앙(74)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안타깝게도 가정폭력은 오늘날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심각하고 두려운 문제이며, 여전히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먼 과제로 남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리앙은 중편소설 ‘살부’(1983)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대만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다. 2004년 프랑스 문화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으며, 여성과 역사, 민간신앙 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리앙은 24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하는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는다. 도서전에서는 김주아 작가와 함께 ‘말해진 이야기들: 여성×역사×몸’을 주제로 27일 강연을 펼친다.
대만 작가 리앙(사진=타이완콘텐츠진흥원).
그의 대표작 ‘살부’는 최근 국내에 새롭게 번역·출간돼 한국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기존 해외 번역본들이 단편 ‘살부’만 수록한 것과 달리, 이번 한국어판은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록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연작 소설 ‘록성 이야기’ 등을 함께 담은 소설집 형태로 출간됐다.
리앙 작가는 “지난 40년 동안 ‘살부’는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번역·출간돼 왔다”며 “최근 2년 사이에도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서 새로운 번역본과 개정판을 내고 싶다며 판권 문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살부’는 제목 그대로 ‘남편을 죽이다’라는 뜻을 지닌 작품이다. 대만의 작은 마을 루강을 배경으로, 가난과 낙인 속에서 자란 여성 린스가 도살업자인 남편 천장의 폭력과 성적 학대, 공동체의 침묵과 조롱 속에서 끝내 남편을 살해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린스의 살인을 단순한 범죄가 아닌, 가부장제 폭력에 짓눌린 한 인간의 마지막 저항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출간 당시 이 작품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대학 교수직 해임 요구까지 불러왔다. 리앙 작가는 “성적 학대와 폭력, 굶주림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독자들이 그 고통과 해악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며 “여전히 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폭력과 괴롭힘, 학대의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리앙 작가는 “과거에는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이 묵묵히 견디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며 “오늘날 여성들은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고,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진보”라고 강조했다.
최근 대만 작가 양솽쯔의 ‘부커상’ 수상 등을 계기로 대만 문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는 “대만 작가들이 주목받는 현상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각 나라의 문화적 영향력이 커진 결과”라며 “대만을 반도체에만 국한해 바라보지 않으려면 번역을 통해 대만 문학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앙은 지난 20년간 대만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한 ‘영리사실주의’ 삼부작을 집필해 왔다. 현재는 가부장제와 계엄 체제 아래 한 여성의 성장과 저항을 담은 신작 ‘소설의 자전’(An Autobiography of Fiction)을 준비 중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이 번역·출간돼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