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은 색일까, 욕망일까, 통제일까"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6월 24일, 오전 09:01

[신간]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소설집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는 가족 안에서 스며드는 통제와 디지털 환경이 바꾸는 감각을 '색채'라는 언어로 파고든다. 저자 이시경은 7편의 단편을 연결해 억압과 기억, 욕망의 귀환을 한 권의 흐름으로 묶었다.

이 소설집의 중심에는 색을 시각적 장치가 아니라 권력과 기억의 작동 방식으로 돌려세우는 발상이 놓여 있다. 표제작은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통제를 따라가며, 선택을 빼앗긴 감각이 어떻게 뒤틀리는지 붙든다.

이 흐름은 책 전체로 넓어진다. 첫 편의 빨강은 마지막 편에서 다시 돌아오고, 세 번째 편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여섯 번째 편에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 단편을 순서대로 읽을수록 각 작품은 따로 흩어지기보다 하나의 장편처럼 맞물린다.

수록작이 다루는 장면도 넓다. 가족의 침묵과 정체성의 박탈이 한 축을 이루고, 알고리즘이 관계를 대신하는 상황과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묻는 장면이 다른 축을 세운다. 낯선 배경과 장치를 끌어오지만 결국 닿는 지점은 상실과 억압, 기억의 변형 같은 오래된 질문이다.

책은 장르를 한 방향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SF의 외피를 두른 이야기와 심리소설, 동화적 요소, 마술적 사실주의의 결이 한 권 안에서 교차한다. 장르를 섞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야기마다 필요한 형식을 새로 세우려는 태도가 전면에 드러난다.

여성 서사의 결도 눈에 띈다. 고통을 곧바로 진술하기보다 색채와 변신, 환상을 우회로로 삼아 더 강한 감응을 끌어낸다. 수동적 여성상이나 고통의 직접 진술에 기대지 않고 다른 문법을 밀어 올린다는 점도 이 책의 축이다.

에디터픽 시리즈 첫 권이라는 자리 역시 이 소설집의 성격을 선명하게 한다.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가려 뽑은 시리즈의 출발점에 놓였고, 서울의 골목과 마곡 13지구, 로데오 뒷골목에서 데스밸리와 시베리아, 파리로 뻗는 공간 감각도 함께 품었다.

이시경은 대구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에 '데스밸리 판타지'가 당선돼 등단했고, 이후 여러 작품이 스토리코스모스 라이브러리에 선정되며 이번 출간으로 이어졌다.

△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이시경 지음/ 256쪽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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