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대머리 된 세상…검은 머리 돋자 삶이 흔들렸다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6월 25일, 오전 09:01

소설 '돋아나다'는 모든 성인이 대머리가 된 사회를 세우고, 그 질서에서 혼자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한 마치카의 불안을 따라간다.

소설 '돋아나다'는 모든 성인이 대머리가 된 사회를 세우고, 그 질서에서 혼자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한 마치카의 불안을 따라간다. 다카세 준코는 탈모가 사라진 콤플렉스인지 새로운 차별의 출발선인지 묻으며 외모와 관계의 균열을 밀어붙인다.

전염병이 번진 뒤 성인들은 모두 머리카락을 잃고 대머리가 된다. 초반의 혼란이 지나가자 사회는 대머리를 새로운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마치카도 그 질서 안에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 적은 머리숱이 콤플렉스였던 그에게 대머리 생활은 처음으로 외모의 압박이 느슨해진 시간이다.

대머리가 표준이 된 뒤 시작된 역전
마치카의 일상은 탕 목욕을 즐길 만큼 편안해졌지만, 어느 날 매끈한 두피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올라오며 균열이 생긴다. 모두가 대머리인 세계에서 혼자 머리카락을 되찾는 일은 회복이 아니라 노출이 된다. 머리가 다시 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지금의 일상과 회사 생활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먼저 앞선다.

소설은 머리카락을 잃는 재난보다 그 뒤에 굳어진 새 규범을 더 오래 바라본다. 한때는 머리카락이 없다는 사실이 낙인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대머리가 오히려 사회의 평균이 된다. 그 평균에서 벗어나는 순간 마치카는 다시 시선의 대상이 된다.

이 역전은 외모 규범이 사라진 듯 보이는 사회에서도 비교와 배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모두 같은 상태가 됐다고 해서 상처의 기억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 마치카가 붙잡는 공포는 머리카락 자체보다 다시 분류되고 해석되는 자신의 위치다.

작품은 대머리 사회를 기이한 상상으로만 밀어가지 않는다. 가발과 두피 타투, 화장과 피어싱, 목걸이 같은 장식이 머리카락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며 또 다른 멋의 기준을 만든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는 사람과 꾸밈을 이어가는 사람 사이에도 새로운 거리감이 생긴다.

학교 풍경도 달라진다. 금발과 파마, 장발 규제가 무뎌진 자리에서 청소년들은 언젠가 머리카락을 잃게 될 미래를 앞둔 채 지금의 머리 모양을 누린다. 두발 규제가 사라진 장면은 자유의 확대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머리카락이 사라질 시간을 예비하는 풍경으로 겹쳐진다.

이런 배경 속에서 마치카가 품는 소망은 단순하지 않다. 그는 "전부 다 대머리가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한 올도 남김없이"라고 바란다. 모두가 같은 상태여야만 자신도 덜 아프다는 역설이 작품의 밑바닥을 이룬다.

소설 '돋아나다'는 모든 성인이 대머리가 된 사회를 세우고, 그 질서에서 혼자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한 마치카의 불안을 따라간다.

목욕과 가발 사이…흔들리는 일상
마치카는 대머리가 된 뒤 목욕을 즐기고 가발 없이도 남의 눈을 덜 의식한다. 머리카락을 감기 위해 매일 샤워해야 했던 생활 습관도 달라진다. 머리카락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일상의 시간표와 몸을 대하는 방식이 함께 바뀌는 셈이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자 그 일상은 곧바로 긴장으로 바뀐다. 일시적 현상일 거라 여기지만 머리는 계속 자라고, 숨기기 위해 쓴 가발도 한계에 닿는다. 대머리 과도기를 지나 안정을 찾은 사회에서 그는 다시 과도기의 몸으로 밀려난다.

작품은 이 불안을 선정적으로 키우기보다 생활의 세목으로 번역한다.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을지, 탕에 가도 될지, 친구와의 거리가 달라질지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외모의 변화가 제도보다 먼저 인간관계와 생활 동선을 흔드는 방식이 또렷하다.

마치카를 붙드는 것은 현재의 불안만이 아니다. 적은 머리숱 때문에 겪었던 굴욕과 친구 데라를 온전히 대하지 못했던 기억이 계속 따라붙는다. 모두가 동등하게 대머리가 됐어도 과거의 수치와 비교 습관은 남아 있어 관계를 다시 어렵게 만든다.

소설은 대머리만이 유일한 차별의 언어가 아니라고 짚는다. 누군가를 향한 비하와 모멸은 다른 이름으로 계속 남고, 상처를 준 사람과 어떻게 타협하며 살아갈지 묻는 장면도 이어진다. 머리카락의 유무는 이 세계에서 인간관계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가장 선명한 장치다.

다카세 준코는 2019년 데뷔한 뒤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고, '샤워'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일상적인 불편을 낯선 설정으로 밀어붙인다. 직장과 가정, 몸과 관계처럼 익숙한 재료를 비틀어 사회의 평균이 누구를 기준으로 세워지는지 되묻는 흐름이 이번 소설에도 이어진다.

△ '돋아나다'/ 다카세 준코 지음/ 박우주 옮김/ 176쪽

소설 '돋아나다'는 모든 성인이 대머리가 된 사회를 세우고, 그 질서에서 혼자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한 마치카의 불안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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