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 홍진기와 대일외교'는 해방 이후 한일회담의 핵심 장면을 따라가며 홍진기가 세운 대일외교의 논리와 궤적을 짚는다.
'유민 홍진기와 대일외교'는 해방 이후 한일회담의 핵심 장면을 따라가며 홍진기가 세운 대일외교의 논리와 궤적을 짚는다. 이하경을 비롯한 네 명의 필자는 '해방의 이론'과 대일배상요구조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조항, 구보타 망언 파동까지 나눠 맡아 한 인물의 외교 구상을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홍진기는 책 전반에서 해방 직후 한국 외교가 맞닥뜨린 가장 민감한 쟁점의 중심 인물로 놓인다.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식민지 피해를 어떻게 규정할지, 불리한 국제 질서 속에서 어떤 논리로 한국의 권리를 세울지가 이 책의 첫 문제의식이다.
초점은 홍진기의 이력 전반보다 대일 교섭을 움직인 판단과 언어에 맞춰져 있다. 법무부 국장이던 시절 대일 교섭 준비기구 구성을 제안하고 대일배상요구조서 작성에 관여한 대목, 미국과 일본이 추진하던 강화조약 흐름에 대응한 과정이 앞부분의 축을 이룬다.
책은 홍진기의 '해방의 이론'을 핵심 개념으로 세운다. 일본의 패전을 한국의 해방으로 파악한 이 논리는 일본의 역청구권을 반박하는 근거로 제시됐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4조 B항 신설과 연결된 외교적 성과로도 이어진다.
중반부는 필자별 전공을 따라 세부 장면을 나눠 보여준다. 박경민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는 최근 연구 성과와 자료를 바탕으로 한일회담 청구권 교섭을 정리하고, 이원덕 국민대학교 동아시아 국제학부 교수는 '대일배상요구조서' 작성 과정과 강화조약의 한국 조항, 구보타 망언 파동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구보타 간이치로의 식민지 시혜론을 둘러싼 논박은 책에서 가장 선명한 대목 가운데 하나다. 홍진기가 일본의 조선 통치 논리를 반박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끌어낸 과정은 한일회담을 둘러싼 외교 문서의 언어가 어떻게 현실 정치와 맞물렸는지 보여준다.
후반부는 격변하던 국제 정세 속에서 홍진기의 시야를 넓혀 본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현대사와 한미관계의 흐름 속에 홍진기의 고민과 비전을 놓고, 이하경은 홍진기의 생애 전체를 통합적으로 조망하며 외교 현안과 정치·언론 활동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정리한다.
유민이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대일외교 업적은 널리 정리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도 책 전체를 관통한다. 책은 전쟁 전후의 혼란 속에서 한 인물이 어떤 법리와 외교 언어로 국익을 세우려 했는지 묻고, 오늘의 한일관계를 다시 읽는 단서를 남긴다.
△ '유민 홍진기와 대일외교'/ 이하경·이원덕·박태균·박경민 지음/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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