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시부야의 초급반'
'시부야의 초급반'은 2주간 도쿄 시부야의 어학원에 몸을 던진 남궁인의 기록으로, 공부와 여행, 고독이 한 일정 안에서 겹치는 시간을 따라간다.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은 짧은 휴가를 일본어 수업과 거리의 체류 경험으로 채우며 언어를 배우는 일이 타인의 일상에 닿는 과정임을 짚는다.
이 책의 출발점은 여행 자체보다 이동의 이유에 가깝다. 남궁인은 공허함과 무기력 앞에서 쉬어가는 대신 낯선 교실로 들어가고, 시부야라는 번화한 공간을 외롭지 않은 체류지로 삼는다. 휴가를 소비하는 대신 새로운 언어 환경에 자신을 놓아보는 선택이 책 전체의 질문이 된다.
도쿄에서의 하루는 어학원 등교와 수강, 혼자 걷는 시간으로 반복된다. 단계 테스트를 거쳐 초급반에 들어간 그는 각기 다른 국적의 수강생들과 새 문장을 익히고, 식당 메뉴판을 읽고, 조금씩 말문을 연다. 2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이어가는 변화가 이 기록의 뼈대를 이룬다.
책은 언어 습득을 기술이나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생활 리듬에 가까워지는 일로 붙든다. 안부를 묻고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 갔는지 묻는 반복이야말로 낯선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인식이 중심에 놓인다. 공부는 문법 암기를 넘어 다른 삶의 문장 구조를 익히는 과정으로 넓어진다.
이 시선은 시부야 거리와 카페, 편의점, 숙소 같은 장면에서 더 또렷해진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거리를 배회하다 한국인 직원을 만나는 순간, 쉬는 시간에 어학원 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학생들의 움직임, 방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며 대사를 알아듣는 경험이 하루의 결을 만든다. 여행기이면서도 관광지 정보보다 체류자의 감각과 관찰을 앞세운다.
풍광과 고독을 다루는 대목도 책의 한 축이다. 저자는 야산 뷰에 실망하고 후지산 풍경에 무뎌지는 과정을 통해 익숙함이 감정을 어떻게 바꾸는지 적는다. 좋은 경관이 그날의 행복을 좌우한다는 판단, 탄성을 유지하려면 다시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자각이 여행의 낭만보다 더 건조한 문장으로 남는다.
밤이 되면 기록은 삶의 무의미와 의미를 묻는 쪽으로 기운다. '장송의 프리렌'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하루키와 전후 작가들의 작품, 혼자 마시는 맥주와 낯선 방의 정적이 그 사유를 밀어 올린다. 응급의학과 의사로 살아온 한국의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초급반 학생으로만 존재하는 감각도 이때 선명해진다.
남궁인은 의사이자 에세이스트다. 대학 시절부터 배낭여행을 이어왔고, 여러 지역을 오가며 현지어로 대화하는 경험을 좇아왔다. '시부야의 초급반'은 그런 이력이 여행 자체의 과시가 아니라 혼자 머물며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으로 이어진 결과물이다.
△ '시부야의 초급반'/ 남궁인 지음/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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