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비밀구락부'
'비밀구락부'는 식민지 경성의 비밀 독서회에서 시작해 해방과 삼팔선, 6·25로 이어지는 격랑 속에서 가명으로 버틴 사람들의 30년을 좇는다. 저자 이화경은 애란과 현욱, 주드, 에이든의 엇갈린 시선을 따라 첩보와 이념보다 그 시대를 통과한 인간 군상의 생존과 배신을 앞세운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이름을 빼앗기고 다른 이름으로 밀려난 인물들이 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 본명을 감춘 독서회에서 시작한 관계는 해방 뒤 더 거대한 비밀과 충돌하며 개인의 삶을 뒤흔든다.
애란의 삶은 그 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열 살에 민며느리로 팔려 갔다가 도망친 그는 선교사의 도움으로 글을 배우고 이화여전을 다니는 신여성으로 성장하며 '천아지'에서 '애란'으로 삶의 궤적을 바꾼다.
소설은 한 인물의 고정된 시선에 머물지 않는다. 밑바닥에서 미군정 통역사로 올라선 애란, 좌익 진영의 지도자가 된 현욱, 그를 뒤쫓는 미군 방첩대원 주드, 애란의 뒷배인 미 헌병사령관 에이든이 번갈아 전면에 나온다.
시간의 폭도 넓다. 1926년부터 1955년까지 이어지는 서사는 식민지 시절과 해방, 삼팔선, 6·25를 거치며 한반도 전체가 첩보와 밀고, 알력 다툼이 일상이 된 공간으로 바뀌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이념과 사랑, 국적은 끝까지 분리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동지였던 인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배신자나 표적이 되면서, 인물들은 한 장면만으로 규정되지 않는 얼굴을 드러낸다.
실제 사건을 바탕에 둔 설정도 눈에 띈다. 작중 인물과 역사 속 인물을 겹쳐 읽게 하는 구조가 더해지면서 겹치고 어긋나는 목소리 사이로 해방기의 초상이 떠오른다.
8년 만에 장편소설로 돌아온 이화경은 평안도 사투리의 질긴 입말부터 첩보의 냉랭한 문법까지 한 서사 안에 묶는다. 여러 권의 소설을 펴내며 다져온 문체는 선악의 판정 대신 각 인물이 감당한 희생과 폭력의 결을 더듬는 쪽으로 향한다.
△ '비밀구락부'/ 이화경 지음/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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