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 송수남, 나팔꽃, 월간샘터, 샘터, 1970년 8월, 내지 (p.41) (케이옥션 제공)
케이옥션이 21일 오후 4시 마감하는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에 월간지 '샘터'의 역사적 아카이브를 출품한다. 1970년 창간 이후 반세기 넘게 한국인의 일상을 채웠던 '샘터'의 표지 및 내지 원화 49점과 소장 컬렉션 11점 등 총 60점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출품의 전체 규모는 약 8000만 원에 달한다. 원화와 해당 잡지 실물이 세트로 함께 출품된다는 점에서 출판문화사적으로 보기 드문 기록적 경매다.
1970년 4월,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만든 '샘터'는 한국 출판 역사에 굵직한 궤적을 남겼다. 담배 한 갑보다 싼 가격, 쉬운 우리말 쓰기, 가로쓰기 도입 등으로 독서 대중화를 이끌며 전성기에는 발행 부수 50만 부를 기록했다.
호암 이병철 공수래공수거 (케이옥션 제공)
피천득, 법정 스님 등 당대 최고 문인들이 글을 썼고 소설가 한강과 시인 정호승이 기자로 청춘을 보낸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0년 독자들의 후원으로 한차례 부활했던 '샘터'는 결국 2026년 1월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고, 그 56년의 여정이 남긴 유산이 이번 경매에 나오게 됐다.
이번 경매의 본질은 순수 미술과 대중 매체의 흥미로운 교차점이다. 1970년대 화랑 중심의 시장이 형성되며 미술품 가격이 급등할 때,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한 대중에게 원화를 배달한 것이 바로 '샘터'였다. 운보 김기창, 남정 박노수, 손응성, 남천 송수남 등 거장들의 작품이 매달 수백만 독자의 안방으로 찾아갔다.
이번에 출품되는 박노수의 '산수도'(시작가 100만 원), 손응성의 '교외의 풍경'(시작가 400만 원), 김기창의 '도자기'(시작가 300만 원) 등은 단순한 감상용 미술품을 넘어, 미술관이 부족했던 시절 대중과 호흡한 한국 근현대 미술의 생생한 공개 기록물이다. 연도와 호수, 수록 면까지 출판 기록으로 명확히 검증된다는 점도 소장 가치를 더한다.
운보 김기창, 월간샘터, 샘터, 1972년 2월, 내지 (p.41) (케이옥션 제공)
잡지 밖에서 숨 쉬던 샘터의 컬렉션 11점도 눈길을 끈다. 단연 화제는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이 1981년에 쓴서예 작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시작가 1500만 원)다. 오랫동안 샘터 이사장실에 걸려 있다가 처음 시장에 공개되는 이 작품은 거인의 경영 철학과 삶의 무소유 태도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 외에도 박선기의 설치 작업 '파노라마(Panorama) 2008'(시작가 800만 원), 조선 후기 민화의 정수인 '책가도' 6점 세트(시작가 500만 원) 등이 새 주인을 찾는다.
종이 매체의 몰락 속에서 '샘터'의 무기한 휴간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러나 이번 경매는 한 시대의 종말이 아닌, 문화적 자산의 재탄생으로 읽어야 한다. 책장에 꽂혀 있던 낡은 잡지 속 그림들이 당당히 경매 시장의 주인공으로 귀환했다.
'소유하지 않는 삶'을 말하던 호암의 글씨와 대중의 행복을 바랐던 거장들의 붓끝이 이제는 자본의 가치로 평가받게 된 아이러니 속에서도, 시대를 위로했던 문화 아카이브의 생명력은 미술품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는다. 문화적 가치와 자본의 논리가 정교하게 맞물린 이번 경매의 결과에 미술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