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여 년 만에 깨어난 백제 무령왕릉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07일, 오전 06:00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가 무령왕릉 출토 식기를 관람하고 있다. 2026.6.30 © 뉴스1 오대일 기자

1971년 7월 7일,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다. 1400여 년 동안 온전히 봉인되어 있던이 무덤은 한국 고고학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발견이었다.

당시 장마철을 앞두고 기존 무덤들의 침수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를 진행하던 중 인부의 도구 끝에 단단한 벽돌이 걸려들었다. 도굴꾼의 손이 닿지 않은 채 무령왕릉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현장에 정식 파견된 국립박물관 발굴조사단은 무덤 입구를 막은 벽돌들을 해체하며 본격적인 발굴 경과에 착수했다. 어두운 무덤 문이 열리자 입구 중앙에서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석수(진묘수)가 조사단을 맞이했다. 그 앞에는 무덤 주인의 신원을 명시한 두 장의 지석이 놓여 있었다.

지석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이로써 삼국시대 무덤 중 최초로 피장자의 명확한 신원과 정확한 축조 연대를 확인하는 고고학적 쾌거를 달성했다. 내부에서는 금제 관장식, 귀걸이, 청동거울, 그리고 왕과 왕비의 목관 잔해 등 4600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밀려드는 언론의 취재 경쟁과 흥분한 인파로 인해 현장 통제가 불가능해지자, 발굴단은 유물 훼손을 우려해 단 하룻밤 만에 유물을 자루에 담아 철수했다. 이는 한국 고고학사에서 '세기의 발견이자 최악의 졸속 발굴'이라는 아쉬운 이면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령왕릉 발견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독보적이다.

출토된 벽돌무덤 구조와 도자기들은 당시 백제가 중국 남조(양나라)와 긴밀한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목관 재료인 금송을 통해 일본과도 활발히 교류했음을 실물로 증명했다. 삼국사기 등 제한적인 문헌 기록에만 의존하던 웅진기 백제의 화려한 문화와 대외 관계를 입증하며,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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