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의 공연 장면.(사진=국립정동극장)
희곡의 구조 역시 흥미롭다. 죽은 양의 기억이 다른 양에게 꿈처럼 전승되고, 그 꿈이 다시 다음 존재에게 이어지는 방식은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연상시킨다. 반복되지만 완전히 같지 않은 이야기, 실패로 끝나지만 다시 시작되는 서사. 이 반복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작품의 철학 그 자체다. 삶은 늘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 같지만, 그 반복 속에서 누군가는 이전과 다른 질문을 품게 된다. 극은 바로 그 미세한 변화의 가능성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의 공연 장면.(사진=국립정동극장)
희곡이 품고 있는 상징과 사유의 깊이를 무대 위에서 온전히 구현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연출 역시 여러 이미지와 아이디어가 풍성하게 제시되지만, 때로는 그것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완전히 응집되지 못한 채 흩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지점이 싫지 않았던 것은, 오랜만에 공연장에서 만나는 어떤 생경한 감각 때문이었다. 잘 정리된 완성도 대신 거친 실험성이 있었고, 세련된 기술 대신 창작자의 고민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무르익은 작품이 주는 안정감과는 다른 종류의 매력이었다. 어쩌면 젊은 창작자만이 가질 수 있는 떫고도 신선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작품의 마지막에 얼룩말 세로가 외치는 “다시”라는 말은 대사라기보다 하나의 다짐처럼 들린다. 그것은 희망의 언어라기보다 의지의 언어에 가깝다.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낙관도, 탈출 끝에 낙원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도 아닌,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뛰겠다는 ‘결심’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의 공연 장면.(사진=국립정동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