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옥의 숫자 세기부터 토양 정화까지…세포로 읽는 생존 전략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07일, 오전 09:01

[신간]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는 뇌도 신경계도 없는 식물이 환경을 감지하고 판단하며 기억하는 과정을 세포와 분자 수준에서 파고든다. 저자 곽준명은 파리지옥의 포획, 식물의 재난 경보, 탄소 저장과 토양 정화 사례를 따라가며 식물 연구가 기후위기와 식량, 신약 개발까지 닿는 이유를 짚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체라는 통념은 이 책의 첫머리에서 곧바로 흔들린다. 식물은 제자리에 뿌리내린 채 살아가지만, 세포 신호전달과 유전자 조절을 통해 외부 자극을 빠르게 가려내고 대응한다. 책은 이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현상 소개가 아니라 작동 원리의 언어로 풀어낸다.

세포가 판단하는 생존 전략
첫 장은 식물이 위기를 돌파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세균이 침입하면 감염된 세포를 스스로 죽여 확산을 막고, 같은 공격이 반복될 때를 대비해 면역 유전자를 서둘러 준비시키는 과정이 먼저 나온다. 식물의 방어가 수동적 반응이 아니라 선택과 준비를 포함한 체계라는 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곰팡이와의 대결에서는 세포보다도 작은 RNA 조각이 전면에 선다. 책은 식물과 곰팡이가 서로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 작은 조각을 주고받는 장면을 통해 미시 세계의 전투를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준에서 벌어지는 교란과 방어가 식물 생존의 한 축으로 제시된다.

가뭄에 맞서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식물은 숨을 줄이듯 수분 손실을 조절하고, 한정된 자원을 버티는 방향으로 배분한다. 책은 물 부족을 견디는 전략을 통해 식물이 환경을 읽고 몸의 반응을 바꾸는 존재라는 점을 이어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세포와 단백질, 유전자라는 낯선 영역을 일상적 비유와 각주로 연결한다. 식물의 행동을 의인화해 과장하기보다, 왜 그런 반응이 나타나는지 독자가 따라가게 만드는 구성이 중심이다.

[신간]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신호와 기억의 언어
둘째 장은 식물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과거의 스트레스를 저장하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척박한 땅에서 세균과 동맹을 맺는 과정, 위험을 알리는 휘발성 화합물, 같은 종이나 가까운 친척만 알아듣는 경보 체계가 대표 사례로 배치된다.

식물의 기억은 감각의 연장선에서 다뤄진다. 책은 스트레스 대응 신호를 단백질의 형태로 남기거나 DNA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기억을 설명한다. 뇌가 없는 식물의 학습을 세포 수준의 저장과 호출 과정으로 옮겨 놓은 셈이다.

노화와 열매의 관계를 짚는 대목은 식물 연구가 생존 기술에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노화 조절 메커니즘을 밝히면 열매와 씨앗의 성장, 곡물 수확량, 크기 조절 같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식물의 시간 감각이 농업과 식량 문제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책은 여기서 식물을 신비화하지 않는다. 소리 경보, 형광 반응, 기억과 망각 같은 장면도 결국 어떤 세포 반응과 분자 기작이 작동하는지로 수렴한다. 식물의 '지능'을 둘러싼 흥미를 과학적 설명으로 끌고 가는 방식이다.

식물 연구가 닿는 미래
셋째 장에서는 식물 연구의 응용 가능성이 전면으로 나온다. 중금속과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식물,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저장하는 뿌리 구조, 식물 세포를 활용한 신약 개발 가능성이 한 줄기로 묶인다. 책의 문제의식이 생태 교양을 넘어 산업과 환경의 과제로 확장되는 대목이다.

특히 미국 솔크연구소 연구팀의 사례는 기후위기 대응과 맞물린다. 책은 뿌리의 수베린 함량을 높이면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토양에 안정적으로 묶어둘 수 있다는 연구를 소개한다. 식물이 대기를 정화하는 녹색 필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이 지점에서 나온다.

더 진한 보라색 피튜니아 꽃을 만들려던 연구가 RNA 치료제 발견으로 이어진 사례도 실린다. 식물 연구가 인간 질병 치료와 동떨어진 분야가 아니라는 뜻이다. 식물 세포를 들여다보는 일이 결국 생명체 전체의 공통 원리를 이해하는 길이라는 저자의 시선이 선명해진다.

이 대목에서 책은 식물을 보호의 대상만으로 두지 않는다. 기후위기, 식량 생산, 신약 개발이라는 현재형 과제 앞에서 식물 연구가 어떤 실마리를 줄 수 있는지 구체 사례로 보여준다. 과학 교양서의 범위를 미래 기술과 환경 문제까지 넓힌 구성이다.

감각을 증명하는 사례들
넷째 장은 식물의 감각을 더 좁고 구체적인 사례로 압축한다. 빛과 온도를 읽어 계절을 감지하는 방식, 꽃이 피고 지는 시점을 조절하는 메커니즘, 열매와 곡식 알갱이가 떨어지는 원리를 차례로 다룬다. 식물의 생애 주기를 움직이는 감각이 한 장 안에서 연결된다.

파리지옥의 사례는 책 전체에서 가장 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다. 2016년 독일 식물과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파리지옥이 자극 횟수와 시간 간격을 구분해 올가미를 닫는 과정을 설명한다. 숫자를 세는 식물이라는 표현은 이 사례를 통해 구체적 메커니즘으로 환원된다.

연구실에서 촬영한 전자현미경 사진과 QR코드 영상도 책의 특징으로 묶인다. 세포와 반응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면서 식물 분자생물학의 문턱을 낮춘다. 미시 세계를 보여주는 시각 자료가 설명의 보조 장치에 그치지 않고 이해의 통로로 기능한다.

곽준명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뉴바이올로지학과 특훈교수는 연세대 생화학과와 포항공대 석·박사 과정을 거쳐 미국에서 연구를 이어왔고, 현재는 식물 성장과 발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곽준명 지음/ 340쪽

[신간]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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