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생존자 상처 다시 열고 싶지 않았다"…증언을 대하는 작가의 원칙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13일, 오전 09:19

작가 한강이 12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에서 열린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프랑스 언론인 로르 아들레르와 ‘어떻게 눈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영상 캡쳐. 재판매 및 DB 금지) 2026.7.13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광주와 제주, 눈과 물, 죽음과 삶. 작가 한강은 두 비극을 통과한 자신의 장편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한 쌍의 책"이라고 불렀다.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다뤘지만, 그 문장이 향한 곳은 한 나라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간이 되풀이해 온 폭력과 그 뒤에 남은 사람들의 애도였다는 설명이다.

한강은 12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주최 측이 공식 홈페이지 내 언론 전용 페이지를 통해 취재진에 제공한 대담 영상에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연결돼 있다 할 수 있고, 두 권이 한 쌍의 책들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날 대담은 '어떻게 눈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열린 '카페 데 지데'(Café des id es) 프로그램이다. '카페 데 지데'는 축제 기간 예술가와 작가, 지식인 등이 관객과 생각을 나누는 대담 프로그램으로, 이날은 프랑스 언론인 로르 아들레르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과 기억, 침묵, 전해지는 것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한국의 역사만을 다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구가 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모두 연결되어 있다"며 "인류 역사에 걸쳐 반복돼온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언제나 남게 되는, 작별하지 않는, 애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됐다"며 "이게 단순히 오직 한국의 역사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자신의 원칙을 밝혔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도 그렇고 '작별하지 않는다'도 그렇고 그 구술 증언들이 굉장히 저에겐 중요했다"며 "수백 명의 증언들을 가능한 한 다 찾아 읽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경험할 때에는 파편으로 경험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생생하게 제가 파편들 속에 존재해보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를 조망하는 책들은 맨 나중에 읽었다. 그게 저에게는 중요한 원칙이었다"고 했다.

다만 생존자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지 않는 것을 또 하나의 원칙으로 삼았다고 했다. 한강은 "그분들은 이미 다 증언을 하셨는데 제가 다시 가서 그 상처를 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저는 최대한 그 증언들을 읽고 그 경험 속에 있고자 노력했고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는 이 소설을 두고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히는 이야기", "눈보라를 헤치고 새 한 마리를 구하러 가는 사람의 이야기", "차갑지만 뜨거운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눈과 물의 이미지는 이날 대담을 관통했다. 한강은 "며칠 전에 아비뇽에도 비가 내렸다고 했는데, 그 비가 3년 전에 제가 맞았던 눈일 수도 있는 것"이라며 "물이 순환하는 것처럼 우리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그런 감각도 이 소설 속에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담 제목과 연결되는 발언도 이어졌다. 한강은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고 우리는 모두가 다 한계를 가진 존재"라며 "그 한계 위에서 뭔가를 쓴다는 것이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고 언젠가 사라질 존재라서 그 위에, 우리의 존재성 위에 글을 쓴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는 "가장 절망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도 뭔가 우리를 삶 쪽으로 한 발 이렇게 손을 잡고 가준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문학을 읽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진실한 순간들이 우리를 연결해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담 초반에는 한강이 운영했던 책방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2018년부터 준비해 동네에 작은 서점을 열었다며 "책방을 열고 싶다는 생각은 20대부터 했다"고 말했다.

이어 "행복하게 8년을 보냈고 그 서점은 불과 며칠 전에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한강은 "건물이 팔려 세입자가 나가게 되면서 문을 닫았는데, 문을 닫기 직전에 이자벨 위페르 씨가 찾아와서 아무도 모르게, 손님이 없는 오전 시간에 이야기를 나눠서 좋은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올해 80회 행사를 맞아 한국어를 초청 언어로 선정했다. 공식 홈페이지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공연과 문학, 예술적 만남을 중심으로 한국 동시대 예술의 활력과 상상력, 문화적 깊이를 나누는 기회가 마련됐다고 소개했다.

한강의 문장은 곧 아비뇽의 밤 무대로도 이어진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15일과 16일 오후 10시 교황청 궁전 명예의 뜰에서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낭독 퍼포먼스 '새'를 선보인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새'는 프랑스 연출가 줄리 들리케가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장을 낭독 퍼포먼스로 구성한 작품이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이혜영이 프랑스어와 한국어, 두 언어로 한강의 텍스트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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