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출처: Josef Anton Trčka,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인근의 보헤미아 출신 금세공사 집안에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가 태어났다. 훗날 전 세계 미술사를 황금빛 관능으로 물들인 거장이다.
그는 초기에 촉망받는 고전주의 화가로 출발했다. 그러나 클림트의 진정한 위대함은 안정된 주류 예술의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반역자'가 된 데서 비롯된다. 1897년 그는 보수적인 예술계의 검열과 상업주의에 반대하며 전통적 예술 체제를 이탈한 예술가 집단 '비엔나 분리파(Vienna Secession)'를 결성해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시대를 위한 예술을, 예술을 위한 자유를"이라는 이들의 슬로건은 클림트의 예술적 나침반이 됐다.
클림트 미술의 정점은 1900년대 전후의 일명 '황금 시기'에 구현됐다. 아버지가 다루던 금박 기법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진짜 금박과 은박을 캔버스에 입히고, 기하학적 문양과 화려한 장식성을 결합해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그의 대표작 '키스'와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작 I'은 이 시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는 찬란한 황금빛 속에 인간의 성(性)과 사랑, 그리고 그 이면에 도사린 죽음과 불안이라는 세기말적 주제를 대담하게 녹여냈다. 당대에는 외설 시비와 파격성으로 비난받았으나, 이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을 시각화하려 했던 상징주의의 선구적 시도였다.
클림트는 풍경화에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아테제 호숫가에서 보낸 여름 휴가 기간에 그가 그린 풍경화들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화면을 가득 채운 모자이크 같은 색채의 향연으로, 훗날 표현주의와 추상미술의 출현을 예고했다.
1918년 2월 6일 뇌졸중과 스페인 독감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클림트는 회화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했다. 그는 고인 물 같았던 19세기 아카데미 미술을 끝내고 20세기 모더니즘의 문을 활짝 연 미술사의 거대한 이정표다. 그의 예술적 여정은 여전히 황금빛 생명력으로 빛나고 있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