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유리 예보'는 유리와 눈, 나무, 손끝 같은 사물의 표면에 이별과 죽음 이후의 기억, 인간 사이의 거리를 겹쳐 놓는다
'내일의 유리 예보'는 유리와 눈, 나무, 손끝 같은 사물의 표면에 이별과 죽음 이후의 기억, 인간 사이의 거리를 겹쳐 놓는다. 저자 천수호는 네 번째 시집에서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오래 응시하며 지금 여기 손끝에 닿는 예감으로 슬픔의 시간을 다시 짚는다.
이 시집은 미래를 예언하는 말보다 이미 와 있는 감각을 붙드는 데 힘을 싣는다. 투명한 벽 앞에서 멈춘 손끝,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말과 물건, 인간 사이에 놓인 거리가 첫머리에서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표제시 '유리 뒤에서'는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장면을 압축한다. 유리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나와 세계 사이에 놓인 얇은 막으로 놓이고,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것들의 경계가 된다.
시집이 다루는 슬픔은 한 가지 정서로 정리되지 않는다. 눈과 나무, 살구와 손가락, 우물과 벌레 같은 사물의 표면으로 감정이 옮겨 가면서 내면의 흔들림이 외부 풍경으로 번진다.
이별 역시 한 번 끝나는 사건으로 머물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의 방에 기대는 것과 무너진 것, 엎어진 것들이 함께 쌓이는 장면처럼 부재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계속 도착하는 감각으로 남는다.
유리와 손끝 사이
'망각과 지퍼'에 실린 눈발의 이미지는 떠난 사람의 언어가 어떻게 남은 사람의 계절을 바꾸는지 보여 준다. 여름으로 간 사람과 겨울 한가운데 남은 사람의 대비는 부재가 세계의 온도와 방향까지 흔드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천수호는 망각을 단번에 닫히는 장치로 보지 않는다. 닫으려 할수록 새어 나오고 잊으려 할수록 다른 모양으로 되돌아오는 기억이 이 시집의 여러 시편에 겹쳐 흐른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응시도 두드러진다. 사람들은 나무에 귀를 대고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만 끝내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고, 그 침묵은 오히려 더 강하게 심장을 두드리는 감각으로 남는다.
'개살구'에서 살구나무는 등을 돌린 사람의 형상으로 바뀐다. 익는 것은 열매인데 먼저 익는 것은 등이라는 역전된 시선은 천수호가 익숙한 사물의 앞면보다 외면된 뒷면의 감정을 더 오래 들여다본다는 점을 보여 준다.
'내일의 유리 예보'는 유리와 눈, 나무, 손끝 같은 사물의 표면에 이별과 죽음 이후의 기억, 인간 사이의 거리를 겹쳐 놓는다
깨지기 직전의 긴장
이 시집이 붙드는 것은 파편이 된 뒤의 장면만이 아니다. 유리와 꽃잎, 눈처럼 쉽게 상할 수 있는 것들이야말로 세계의 미세한 떨림을 먼저 받아낸다는 점에서 시의 감각은 깨지기 직전의 긴장으로 모인다.
그 긴장은 손끝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의 수선'에서 손은 잡는 기관이면서 놓는 기관이고, 하나를 고르는 동시에 다른 것을 버리는 기관으로 나타난다.
다정한 악수가 폭력의 자세로 뒤집히는 순간도 이 시집의 중요한 장면이다. 쉽게 펼쳐 보이지 못하는 화자의 태도는 상처를 피하려는 방어이면서, 접촉이 곧 상흔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을 드러낸다.
구성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은 넓게 번진다. 1부부터 5부, 그리고 산문 '햇빛보다 얇은 것'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혼자 웃는 꿈, 덜 죽은 벌레, 새벽을 걷어내는 몸짓, 물컹한 실루엣 같은 제목들은 불안과 애도, 생존의 감각을 각기 다른 결로 묶어 낸다.
다섯 부가 남기는 질문
책 속에 실린 '면접 대기석'과 '패닉', '여기에 없는 질문', '애도 나무' 같은 작품들은 상실 이후의 시간이 한 사람의 내부에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 준다. 비명을 지를 입조차 없었던 장면, 뒤늦게 뜨거워지는 이마 같은 표현은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상처가 함께 스며드는 자리를 가리킨다.
천수호는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이번 시집은 네 번째 시집이다. 그동안 병과 죽음, 이별과 애도의 장면 속에서 관계의 의미를 다시 물어온 시선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이 시집은 상실을 위로의 문장으로 서둘러 봉합하지 않는다. 닿을 수 없는 것들의 표면을 끝내 더듬으려는 태도, 이미 지나갔지만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마지막까지 남는다.
△ '내일의 유리 예보'/ 천수호 지음/ 156쪽
'내일의 유리 예보'는 유리와 눈, 나무, 손끝 같은 사물의 표면에 이별과 죽음 이후의 기억, 인간 사이의 거리를 겹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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