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개개의 외계인"…번역가 임종기의 생각들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15일, 오전 10:01

[신간] '외계인 우물'

'외계인 우물'은 AI의 급류 속에서 인간의 상호 이해와 사라져가는 감각을 정면으로 짚는다. 저자 임종기는 유년의 기억부터 근대화의 흔적, 번역가이자 작가로 살아온 시간까지 겹쳐 놓으며 지금 인간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 추적한다.

책은 기술 낙관이나 공포를 앞세우기보다 사라짐의 감각을 붙드는 쪽으로 움직인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힘이 약해지고 데이터와 속도가 판단을 앞서는 시대를 배경으로, 각자가 낯선 존재이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같은 존재라는 문제의식을 밀어 올린다.

그 출발점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외계 비행체 UFO와 마주한 경험이 놓여 있다. 저자가 오래 묵혀둔 이 기억은 기이한 체험담으로 머무르지 않고 타자와 차이에 오래 매달린 시선으로 이어진다. 믿어지지 않는 기억을 붙잡는 태도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의 형식이 된다.

구성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1부 '지구라는 세계에서'와 2부 '카프카의 오드라덱', 3부 '나는 내가 속한 종의 최후다'를 따라가며 활과 화살, 반수면, 등잔불과 전깃불, 거울 청춘, 모기, 사과, 뱀, 웃음, 로또, 밤나무 같은 소재가 잇따라 호출된다. 익숙한 사물과 장면이 인간의 감각과 기억, 불안과 소외를 되비추는 매개로 바뀌는 방식이다.

책은 목차를 따라 사례를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카프카의 오드라덱 같은 문학적 형상과 유령, 비극과 희극의 반복, 표절과 '예술의 한계' 같은 주제를 끌어오며 인간 이해가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 살핀다. 개별 항목은 흩어진 단상이 아니라, 사유의 말소와 삭제로 향하는 시대를 어떻게 견딜 것인지 묻는 갈래로 묶인다.

문장 바깥의 시간감각도 선명하다. 저자는 불과 반세기 전의 근대화와 산업화 경험을 현재의 AI 흐름과 포개 놓으며, 유년의 추억과 냉엄한 현실 인식이 어떻게 같은 문장 안에서 맞부딪히는지 보여준다. 문학과 인문학, 예술을 좋아했던 세기말 청춘의 고민은 반백을 넘긴 지금의 시선과 이어지며 사색의 궤적을 만든다.

저자의 이력은 책의 관심사를 설명하는 단서다. 서강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40여 종의 문학·인문과학 책을 번역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문학 저널에 단편과 시 10편을 발표한 경력도 이 책이 학문, 번역, 창작의 경계를 함께 밟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이 붙드는 것은 거대한 기술 담론보다 그 흐름에서 밀려나는 인간의 감각과 언어다. 데이터의 압도와 AI의 미문이 앞서는 시대일수록 서로를 낯선 존재로 인정하면서도 이해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 '외계인 우물'/ 임종기 지음/ 272쪽

art@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