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하의 공연 ‘하리보 김치(Haribo Kimchi)’의 아비뇽 축제 공연 모습. (아비뇽 축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7.15/뉴스1
프랑스 아비뇽의 한 체육관에 한국식 포장마차가 차려졌다.
실제 관객 두 명이 무대 위 손님으로 초대됐다. 구자하는 한 손님에게 직접 만든 소맥을 “라이트 보드카”라고 소개해 건넸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다른 손님에게는 얼음물을 내놓았다. 이어 오이와 쌈장이 먼저 놓였다.김치통이 열리고 잘게 썬 김치가 반죽물에 버무려지자, 건조하고 퀘퀘하던 극장 안에 시큼하고 꼬릿한 냄새가 차오르기 시작했다.잠시 낯설게 떠돌던 냄새는 달군 기름 위에서 지글거리며 곧 고소한 전 냄새로 바뀌었다.
한국 예술가 구자하의 ‘하리보 김치’는 그 냄새의 전환 위에 서 있는 작품이었다.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인 이 공연은 14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 미스트랄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 앞에 올랐다.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도 객석에서 공연을 끝까지 관람했다.
‘하리보 김치’는 한식을 소개하는 공연이 아니다. 음식은 소재라기보다 통로에 가깝다. 구자하는 할머니가 싸준 김치 10㎏을 들고 독일에 도착했던 기억에서 출발해, 해외살이의 민망함과 가족의 시간, 몸에 남은 입맛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냄새는 숨기고 싶은 것이면서도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감각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지점은 김치를 이국적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객석에 처음 번진 냄새는 낯설고 다소 불편하다. 그러나 기름 위에서 김치전이 익어가는 순간, 그 냄새는 식욕을 부르는 냄새로 바뀐다. 불편함이 환대로, 거리감이 참여로 바뀌는 시간이다. 관객은 그 변화를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코와 혀, 몸으로 먼저 받아들인다.
구자하는 개인의 일화를 가족사와 한국 현대사의 기억으로 확장한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아버지의 군 복무 기억, 냄새로 남은 트라우마,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풍경은 무대 위 요리와 나란히 놓인다. 공연은 이를 설명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김치전이 익는 냄새, 미역냉국과 버섯전, 젤리 디저트, 객석으로 건네진 소맥이 기억의 층위를 천천히 열어 보인다.
무대 위 포장마차에 앉은 두 관객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음식을 먹고, 작은 화면으로 다른 관객과 같은 영상과 자막을 보며 구자하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연 직후에는 객석의 관객들도 김치전과 냉국을 맛봤다. 그 순간 음식은 공연의 부속물이 아니라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 됐다.
14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 미스트랄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 구자하의 ‘하리보 김치’ 공연 직후 관객들이 김치전과 오이냉국, 버섯전 등 공연에 사용된 음식을 맛보고 있다. 2026.7.15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프랑스 관객 아니 페리에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작은 이야기들이 역사와 사회, 한국의 역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이 특히 좋았다"며 "한국 문화를 잘 모른다고 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을 밖에 세워두지 않고 문을 열어주면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작품"이라고 했다.
공연 중 무대로 초대돼 음식을 먹은 파리 출신 관객 아리치나 하자나자투부(24)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자막을 읽는 데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음식을 먹는 아주 사적인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 감동적이었다"며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신 것은 처음이었는데 보드카 처럼 목이 간지럽지도 않았고 정말 맛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은 한국어를 초청 언어로 선정했다. 그 안에서 ‘하리보 김치’는 한국을 설명하는 대신, 한국에서 떠나온 감각이 어떻게 다른 언어와 몸, 관객의 식탁 위에서 다시 살아나는지를 보여줬다. 구자하의 포장마차는 한국의 맛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냄새와 혀에 남은 기억이 한 사람의 삶과 역사를 어떻게 끌고 다니는지 묻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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