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도 워싱턴 D.C. 설립의 초석이 놓이다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16일, 오전 06:00

워싱턴 D.C. 전경. (출처: Carol M. Highsmith,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790년 7월 16일, 신생 독립국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탄생의 초석이 놓였다. 이날 조지 워싱턴 초대 미국 대통령은 영구 연방 수도의 입지를 결정하는 '수도입지법'(Residence Act)에 최종 서명했다.

이로써 포토맥강 연안에 새로운 계획도시를 건설해 국가의 영구 행정 중심지로 삼는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당시 미국은 신생 국가로서 지역 갈등이 심각했다. 특히 수도 입지 문제는 북부와 남부 주들 간의 패권 다툼으로 번졌다. 뉴욕과 필라델피아 등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 도시를 지지하는 세력과, 농업 중심의 남부에 힘을 실어주려는 세력이 팽팽히 맞섰다. 이 교착 상태를 해결한 것은 타협이었다.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 3인은 이른바 '1790년 타협'을 이끌어냈다. 남부 세력은 북부 주들의 독립 전쟁 채무를 연방 정부가 인수하는 해밀턴의 재정 계획을 승인해 주는 대신, 자신들이 원하던 포토맥강 유역에 영구 수도를 건설하자는 합의를 얻어냈다. 남부와 북부를 잇는 지리적 중심이자, 어느 주에도 종속되지 않는 독립된 연방 정부 직할 구역을 설치하겠다는 구상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이 법안에 따라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사방 10마일(약 260제곱킬로미터)의 연방 직할 구역이 획정됐다. 프랑스 출신 엔지니어 피에르 샤를 랑팡이 도시 설계를 맡아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한 격자형 도로망과 드넓은 광장을 배치했다. 도시의 이름은 독립전쟁의 영웅 조지 워싱턴과 대륙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 즉 워싱턴 D.C.로 명명됐다.

수도입지법 통과 후 임시 수도는 필라델피아로 이전되어 10년간 유지됐으며, 서기 1800년 마침내 연방정부가 워싱턴 D.C.로 완전히 정착했다. 이는 분열 위기에 처했던 신생 미국을 결속시키고 민주주의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결정적 이정표가 됐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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