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작별'은 희귀질환 아이의 보호자로 살아온 시간이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기록한 산문집이다.
'단정한 작별'은 희귀질환 아이의 보호자로 살아온 시간이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기록한 산문집이다. 저자 남유림은 딸 해든의 처음과 끝을 지켜본 시간을 바탕으로 돌봄과 상실, 그리고 계속 살아가는 일을 담담하게 썼다.
책을 펼치면 2023년 7월 6일 오전 8시, 딸의 영정 사진 앞에 앉은 한 여자의 장면에서 시작한다.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 19번 수술대에 오른 아이, 10년 7개월의 생을 산 딸을 먼저 보낸 엄마는 끝내 울지 못한다.
"2023년, 7월6일 오전 8시. 밤을 꼬박 새운 아침이다. 멍하다. 아니 명료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다. 내 딸의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 앉았다. … 양해든양해든양해든. 아이의 이름만 수백 번 읽는다. 나는 끝내 울지 않는다. 못한다"(6쪽)
'단정한 작별'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됐다. 1장 '죽음을 갈망하다', 2장 '죽음을 마주하다', 3장 '죽음을 통과하다'에 이어 '해든이 아빠의 이야기'와 에필로그가 붙는다. 저자는 슬픔을 기록하지만 슬픔을 토로하는 방식으로 쓰지 않았다. 그는 희귀질환 아이의 보호자로 살아온 시간을 담담하고 치밀하게 돌아본다.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의사가 내게 물었다 … 아이의 뇌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입으로 먹지 못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중략) 아이가 사는 동안 당신이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것이고, 당신의 삶은 앞으로 집과 병원만 오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살리시겠습니까?
먼저 저자는 죽음을 동경하던 20대의 기억에서 출발해 아이를 살리기로 한 순간의 결단, 장애와 돌봄이 일상이 된 삶, 그리고 아이를 먼저 보낸 뒤에도 이어지는 살아가기를 따라간다. 저자는 그 과정을 회피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날것의 자리에서 바라본다.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의사가 내게 물었다 … 아이의 뇌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입으로 먹지 못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중략) 아이가 사는 동안 당신이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것이고, 당신의 삶은 앞으로 집과 병원만 오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살리시겠습니까?"(11쪽)
죽음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책 전체의 중심축이다. 저자는 죽음을 갈망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면서도, 자신이 꿈꿨던 죽음의 실체를 다시 해체한다. 결국 그에게 죽음은 신비도 도피도 아니다. 죽음은 삶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결심한 순간과 함께 놓이는 질문이다.
"의사가 아이의 생명에 선택지를 둔다는 것에 분개하며 아이를 살리기로 한 결정에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가 가진 전부를 내놓아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1초도 주저하지 않았을 거다"(26쪽)
몸도 회복하지 못한 산모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느냐, 내게 먼저 전달할 수 있었지 않았냐며 의사를 나무랐다. 당신이라면 숨 쉬는 아이를 죽이는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고 … 그리고 집중치료실에 었는 아이에게 갔다. 약속했다. '너를 끝까지 지켜줄게'
책은 저자의 삶이 죽음에 대한 관념에서 실제 죽음의 현장으로, 다시 죽음을 통과한 이후의 삶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추상적인 사유가 아니라 돌봄의 시간 속에서 몸으로 겪은 변화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 남편이 나중에 털어놓은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남편은 의사를 찾아갔다. 따로 만나 의사에게 따졌다. 몸도 회복하지 못한 산모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느냐, 내게 먼저 전달할 수 있었지 않았냐며 의사를 나무랐다. 당신이라면 숨 쉬는 아이를 죽이는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고 … 그리고 집중치료실에 었는 아이에게 갔다. 약속했다. '너를 끝까지 지켜줄게"(37쪽)
딸 해든과 함께한 시간은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생사가 수시로 교차하는 일상에서 아이와 한 몸처럼 살아내야 했던 돌봄은 단순한 희생이나 고통의 나열로 정리되지 않는다.
"1년 후, 아이의 돌이 지나고 11번째 수술을 했다. 매번 목숨을 건 수술임에도 더 이상 생명 유지 이상의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38도 이상의 열이 나기만 하면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향했다. 밑 빠진 독 같은 상황은 좋아질 줄 몰랐다"(41쪽)
책은 고통 속에서도 기어이 사는 것을 택한 작은 생명을 목격한 기록으로 읽힌다. 저자는 그 생명을 통해 죽음의 두려움 너머에 있는 생의 본질을 묻는다.
"아이를 안는다. 웃지 못할 거라던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면 혀를 쏙 내밀며 기쁨을 표현한다. 입으로 먹지 못할 거라던 아이가 힘을 짜내고 짜내어 젖병을 빤다. 아이가 살고 싶어 한다. 아이에게는 생의 의지가 있다. 나도 살고 싶다. 죽기보다 살고 싶다. 그럼에도 살고 싶다"(43쪽)
딸 해든과 함께한 시간은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생사가 수시로 교차하는 일상에서 아이와 한 몸처럼 살아내야 했던 돌봄은 단순한 희생이나 고통의 나열로 정리되지 않는다.
결국 양해든은 남유림의 곁을 떠났다. 책에는 남겨진 사람의 좌절과 무너짐도 담겼다. 그러나 그 무너짐은 삶을 포기하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슬픔을 온전히 껴안은 채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나아간다. 이 태도 때문에 책의 제목은 과장된 비탄이 아니라 '단정한' 작별이 된다.
"해든 덕분에 나는 죽음을 쫓다가 죽음을 통과해 드디어 삶에 안착했다. 죽음에의 갈망은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 사랑으로 눌러진 것, 덮인 것이다 … 하지만 여전히 기쁨의 순간에 느닷없이 온도가 다른 슬픔이 튀어나오면 나는 뒷걸음질 칠 것이다. 밤새도록 해든을 그리워 할 것이다. 해든의 죽음은 마치 내 인생의 정답지 같아서 나는 매일 그 죽음을 붇들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좇으며 오늘을 살 것이다. 오늘 하루의 몫을 살 것이다"(199쪽)
저자 남유림은 1983년생이다. 대학 졸업 후 영상작가전문교육원에서 시나리오 과정을 수료했고, 교육원 공모전에서 단편 시나리오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낮에는 출판사에 다니고 밤에는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했으나 결혼과 출산으로 둘 다 그만뒀다. 이후 11년간 질병과 장애가 있는 아이의 돌봄 노동을 했으며, 현재는 강원도 춘천에서 읽고 쓰며 살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저자 특유의 덤덤한 단문에 전염돼 쉽게 책장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 가볍게 펼쳤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고 감정을 추슬러야 해서 몇번을 멈춰야 했던 책이다.
△ 단정한 작별/ 남유림 지음/ 232쪽
[신간] '단정한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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