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는 낙인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붙는가"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18일, 오전 07:07

[신간]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는 '미친 여자들'이라는 말 아래 여성의 욕망과 분노, 집착이 사회 구조와 맞물리는 순간을 다섯 편의 소설로 파고든다. 편혜영·최진영·정한아·정보라·예소연은 '매거진창비'에 연재한 작품을 한 권의 선집으로 묶어 각기 다른 광기의 얼굴을 세웠다.

이 소설집의 출발점은 '미쳤다'는 낙인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붙는지를 되묻는 데 있다. 책은 모두가 미친 듯한 세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말이 여성에게 어떻게 덧씌워져 왔는지부터 흔든다.

편혜영 "시간만 투자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신체를 대가로 내놓아야 했다"
첫 작품 '재배의 경제'는 크게 다친 '나'와 누나 석미의 관계를 앞세워 노동과 돌봄, 보험과 신체가 뒤엉킨 장면으로 들어간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장한 채 보험금을 노리는 설정은 빈곤과 장애, 젠더가 한 사람의 몸 위에서 거래되는 구조를 드러낸다.

석미가 내세우는 "비경제적인 건 없다"는 감각은 가족 내부의 돌봄마저 계산의 언어로 바꿔놓는다. 남매의 기묘한 공모는 범죄 서사처럼 흘러가지만, 책이 겨누는 지점은 그 선택을 밀어붙인 생활의 압박이다.

편혜영의 작품이 소설집의 문을 여는 방식은 이후 네 편의 방향도 예고한다. 광기는 개인의 일탈보다 일상과 제도, 가족이 겹치는 자리에서 증폭된다는 문제의식이 첫머리부터 선명하다.

최진영의 '듣고 있어'는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금옥과, 딸의 메시지를 받아든 엄마 애정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서로를 위로하려는 말이 끝내 상대를 구하지 못하는 장면은 가족과 사회가 반복해온 배신의 감각을 파고든다.

정한아의 '여자들의 산'은 오래된 금식기도원과 폐업한 학원이라는 두 공간을 겹쳐 놓는다. 치유와 희생, 돌봄과 믿음이 뒤틀리는 현장을 따라가며,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던 부조리를 드러낸다.

두 작품이 보여주는 공통 축은 이해와 구원의 언어가 어떻게 폭력으로 바뀌는가에 있다.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말, 누군가를 위해 버틴다는 말은 이 책에서 자주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에서 인물들은 자신이 선 자리를 다시 본다.

[신간]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정보라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들킬 수는 없었다"
정보라의 '부서지는 여자'는 장례식장 접객실 도우미와 청소 일을 하는 인물이 단골손님 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얗고 둥근 물체를 발견한 뒤 흔들리기 시작하는 일상을 따라간다. 월세와 공과금, 휴대전화 요금, 양육비가 겹친 생계의 압박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예소연의 '목숨과 숨통'은 소년원에 들어간 아들 윤범을 이해하려는 엄마의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아들의 휴대전화를 켜고 메신저 속 인물 한나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결속은 더 이상 안전한 울타리로 남지 않는다.

책 속 인용문은 각 작품의 긴장을 짧게 압축한다. 몸을 대가로 내놓는 노동,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들킬까 두려워하는 인물, 함께 살고도 서로를 모른다는 고백은 이 소설집이 붙든 불안의 좌표를 보여준다.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가 남기는 질문
다섯 편의 소설 뒤에 각각의 작가 노트를 붙였다. 소설과 노트가 나란히 놓이면서 각 작품이 붙든 감정의 결을 독자가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소설집 말미에 놓인 문제의식은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과 맞닿아 있다. 위대한 재능을 지닌 여성이 미칠 수밖에 없던 시대의 선언을 끌어오되, 이 책은 그 문장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바꾸며 누가 누구를 미쳤다고 불러왔는지 묻는다.

결국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는 광기를 예외적인 상태로 밀어내지 않는다. 다섯 작가가 세운 인물들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질서 속에서 버티는 동안 균열을 드러내고, 책은 그 균열이 개인의 흠결이 아니라 시대의 풍경일 수 있다고 남긴다.

△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편혜영·최진영·정한아·정보라·예소연 지음/ 196쪽

[신간]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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