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고래 그림 보존해 가치 알려야"…반구대 모인 세계유산 전문가들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7월 18일, 오전 09:02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고래 그림이 어디에 있죠?” “저 부분엔 왜 그림이 없을까요?”

17일 오후 5시께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현장. 국내외 세계유산 현장 관리자와 전문가 약 100명이 이곳을 찾았다. 해외에서 온 관리자들은 확장현실(XR)이 결합된 첨단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살펴보거나 휴대전화 카메라로 그림을 확대해보며 호기심 어린 질문을 이어갔다.

17일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 참석자들이 암각화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7일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 참석자들이 암각화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가리아에서 온 마리엘라 인코바(61)씨는 “반구대 암각화 현장에 오니 자연 속에 있는 듯해 좋고 암각화가 인상 깊다”며 “불가리아 슈멘 마다라에도 기수상이 새겨진 암각화가 있는데 우리 역시 보존, 관리에 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다같이 해결법을 논의하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집중호우 잦아져…수문이 해결할까

이날 현장 답사는 국가유산청이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개최한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7000년 전 새겨진 고래와 멧돼지 그림 앞에서 감탄사가 이어졌지만, 걱정 섞인 시선도 뒤따랐다. 비가 많이 내리면 사연댐 수위가 올라가 암각화가 다시 물에 잠길 수 있어서다.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맞았지만 장마철마다 반복되는 침수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울산 울주군 대곡천 일원 3㎞ 구간에 분포한 유산이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포함하며, 고래의 모습과 인류의 포경 활동을 묘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도 가치가 높다.

암각화 침수 문제의 뿌리는 1965년 지어진 사연댐이다. 댐이 만들어진 지 6년 뒤인 1971년 암각화가 발견되면서 보존과 식수 공급이라는 두 과제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사연댐은 현재 울산시민 식수의 약 40%를 담당하고 있다.

사연댐의 만수위는 60m로, 암각화는 그 아래인 53~57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암각화가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이에 2014년 8월부턴 사연댐 수위를 48m 이하로 운영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연 평균 침수일(2013~2020년)은 38일에 달한다.

최근 기후변화로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근본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25년간 해법을 찾기 위한 진통을 이어왔다. 그 결과 올해 하반기 사연댐 수문 3개 설치 공사에 착공해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수문이 설치되면 집중호우 시 물을 빠르게 방류할 수 있어 암각화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현재 막바지 설계 작업이 진행 중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암각화의 보존을 위해서는 물을 빼내야 하지만 그러면 시민 식수 문제가 불거지는 갈등 구조가 지난 25년간 이어졌고 완전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세계유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상욱 울산시장은 “지역 주민에게 중요한 식수 문제를 풀기 위해 다각도에서 노력하겠다”며 “암각화를 지켜내기 위해선 각국이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하는 여러가지 시도들을 적극 참고하고 배우겠다”고 밝혔다.

17일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에서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 참석자들이 암각화를 볼 수 있는 첨단 지능형 망원경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7일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에서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 참석자들이 암각화를 볼 수 있는 첨단 지능형 망원경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등재 후 발길 늘어…관광 활성화·콘텐츠 활용 과제

세계유산 등재 이후 반구천 암각화를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면서 반구천 암각화의 활용 방안 모색도 과제로 떠올랐다. 울산암각화박물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세계유산 등재 직후인 8월 방문객이 1만명을 넘어섰고, 외국인 월 방문객도 세 자릿수를 기록하기 시작해 지난해 10월엔 231명까지 늘었다. 올해 1~6월 반구대암각화박물관 관람객은 5만 1366명으로 전년 동기(3만7325명) 대비 37.6% 증가했다.

반구천 암각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만큼 콘텐츠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가유산청과 울산시는 ‘암각화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보존과 아카이빙 등 연구, 전시, 교육을 한데 아우르는 통합센터가 될 전망이다.

최희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현재는 소규모 전시관만 두 곳 있는데 통합된 센터를 설립하면 유산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보다 활용성이 높을 것”이라며 “보존환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암각화의 가시성을 높이고 교육·체험 등 프로그램을 통해 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인 조지 헨리 오켈로 아붕구 호주국립대 교수는 “포르투갈 코아 계곡의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지 경우 이해당사자들의 동의를 끌어내 보존과 관광을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며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기 위해선 이해당사자 간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곡리 암각화 세부 사진(사진=울산시청)
대곡리 암각화 세부 사진(사진=울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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