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문화·관광 잇는 지방 도시의 정주 전략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7월 19일, 오후 04:32

김영국 교수 / 강원대 관광경영학과
김영국 교수 / 강원대 관광경영학과
은퇴 이후 어디서 살 것인가는 더 이상 개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고령자의 이동이 지역 인구구조와 소비 시장, 문화 수요를 바꾸는 현실적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긴 초고령사회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이 거대한 은퇴 수요가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병원과 교통, 상업·문화 시설이 밀집한 도시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앞다퉈 고령친화 주거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지만, 인구감소와 청년유출, 지역대학 위기, 문화수요가 부족한 지방 도시들은 은퇴자 정주 수요를 지역 활력을 높이는 동력으로 삼지 못하고 있다.

◇정주인구 늘리는 대학연계형 은퇴주거단지

‘대학연계형 은퇴주거단지’(UBRC: 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는 이런 점에서 주목해야 할 모델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미라벨라는 대학 캠퍼스와 은퇴자 주거를 결합해 은퇴자는 강의와 문화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대학은 새로운 평생학습 수요를 확보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도시형이 프리미엄 실버주거 서비스라면, 지방형은 정주인구를 늘리고 지역문화의 수요 기반을 회복하는 지역재생 전략이어야 한다. 같은 UBRC라도 도시와 지방의 모델과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얘기다.

지방에 필요한 것은 실버타운, 그 자체만이 아니다. 은퇴자가 머물려면 의료 접근성, 이동 편의성, 배움의 기회, 문화생활, 자연환경, 이웃과의 관계가 함께 있어야 한다. 은퇴 이후의 삶은 주거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문화·관광·교육이 결합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방형 UBRC는 좋은 집을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라 살 만한 지역을 만드는 사업이어야 한다.

지역대학은 이 전략의 핵심 인프라다. 지방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강의실, 도서관, 공연장, 체육시설, 평생교육원을 갖춘 지역의 지식·문화 플랫폼로 기능을 하고 있다. 대학이 은퇴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 예술교육, 건강관리, 지역문화 해설, 세대교류 프로그램을 열면 은퇴자는 새로운 학습자이자 안정적 문화소비자가 된다. 대학도 지역 전체의 생활문화 거점으로 확장될 수 있다.

◇도시·지방형 UBRC 모델, 방식 달라야

문화관광 관점에서 지방형 UBRC의 의미와 가치는 더 높다. 지방이 안고 있는 공연장, 박물관, 생활문화센터 운영의 고민은 부족한 시설이 아니라 지속적인 이용 수요 부족이 원인이다. 관광객은 성수기에 몰렸다가 비수기엔 사라져 일상적인 문화 수요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지역에 정착한 은퇴자는 공연과 전시를 찾고, 전통시장과 로컬 식당을 이용하며, 인근 관광지를 생활권화한다. 일회성 지출의 관광소비가 생활형 소비로 바뀌는 것이다.

이 점이 지방형 UBRC의 차별성이다. 대도시의 UBRC가 이미 갖춰진 인프라 위에 고령친화 서비스를 얹는 모델이라면, 지방형 UBRC는 부족한 생활과 문화 수요를 만드는 모델이다. 은퇴자의 지역 정착은 가족, 지인의 방문을 유도하는 등 지역과 외부를 연결하는 관계인구의 통로가 된다. 지역대학은 새로운 수요, 문화시설은 반복적 이용자, 지역상권은 안정적 소비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은퇴자 한 명의 정착을 단순한 인구 증가로만 여겨선 안 되는 이유다.

물론 UBRC만이 만능 해법은 아니다. 의료와 교통 격차, 지역사회의 수용성, 대학의 역량, 민간투자 구조 등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 은퇴자를 지역경제를 살리는 유입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존중받는 생활 시민이자 지역문화의 참여자, 후원자로 자리 잡을 때 UBRC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지방은 더 이상 관광객을 많이 부르는 경쟁만으로 버틸 수 없다. 보다 더 오래 머물고, 배우고, 소비하고, 관계를 맺는 밀도 높은 수요를 늘려야 한다. 도시형 UBRC가 고령친화 주거서비스의 선택지라면, 지방형 UBRC는 정주인구를 늘리고 문화관광의 일상적 수요를 만드는 전략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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