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사골 와운마을, 마고단 노고운해…지리산은 '뜬구름' 잡아도 좋다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22일, 오전 06:24

와운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옛 가수 남상규가 불러 유행한 노래 구절이다. 추풍령(秋風嶺)은 220m 높이인데 해발 700m에 이르는 마을의 구름은 아예 누워 있다고 한다. 지리산 뱀사골 아래 와운(臥雲)이다.

응가

와운마을은 버스가 다니는 반선(半仙)마을에서 시작해 반선교를 건너 와운옛길을 2㎞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다. 옛길이 부담스럽다면 관광객이 많이 걷는 신선길을 이용해 가면 된다. 신선처럼 걸을 수 있다는 이 길은 계곡 위에 데크가 설치돼 뱀사골의 숨은 절경을 보여준다.

반선교를 건너 옛길로 들어서자 청명한 새소리와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가 쉴 새 없이 겨룬다. 우거진 숲속 아래 돌이끼가 숨 쉬는 길이 열리고 바닥엔 걷기 편하게 야자 매트가 깔려 포근한 지리산 자락을 맛보게 한다. 절반쯤 올랐을까, 뱀사골의 여러 전설에 나오는 송림사의 암자 터 표지가 보인다. 송림사는 남원의 대표 고찰인 실상사(828년)보다 100여년 앞서 창건됐다. 뱀사골이란 지명은 사실 송림사 전설에서 유래됐다. 매년 음력 칠월 백중날 기도하던 송림사 스님이 사라져 다음해 스님의 옷자락에 독을 묻혀 불공을 드리게 하자 골짜기에 살던 이무기가 죽었고, 그곳을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 즉 뱀사골로 부르게 됐다.

절터 아래쪽에는 샘터가 반긴다. 참샘이라 불릴 정도로 물맛이 달고 맛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말랐다. 이 샘터는 옛날 와운마을 사람들이 길을 지나다가 목을 축였던 곳이다. 샘터에서 한숨 돌리는데 오던 길에서 못 느꼈던 꽃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주변을 아무리 봐도 꽃은 안 보이는데 화향십리(花香十里)라는 말이 대접받는 순간이다.

천년송이

계곡 쪽으로 눈을 돌리자 이상한 모양의 나무가 기자를 웃게 한다. 응가나무라는 ‘이름표’까지 붙은 이 나무는 밑동이 두 개로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는 모양새다. 옛날 화장실이 따로 없던 시절 마을 사람들이 급한 용무를 해결했던 곳이라 한다.

좀 가팔라지더니 곧바로 호랑이 고개라는 언덕이 앞을 막는다. 옛날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러 쫓아왔다가 마을이 보이자, 겁을 먹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고개는 북두재라고도 하는데 마을 북쪽에 호랑이 머리가 보여 이름 지었다는 설, 고개의 지형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닮고 별을 관측하기 좋은 위치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 고갯마루에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있어 ‘북(北)쪽의 큰 두목(우두머리) 나무가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나왔다는 설 등 이야기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그 소나무는 고사했고, 지금은 그 옆자리에 후계목이 자란다.

북두재를 넘자, 양봉을 하는 집이 눈에 띄더니 와운마을이 살포시 앉아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눈골 또는 누운골로도 불리는 와운마을은 안내판에 따르면 1595년 영광정씨(靈光丁氏)와 김녕김씨(金寧金氏)가 국난을 피해 심산유곡을 찾아가다 이곳에 정착했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이 빨치산 소굴이 되자 토벌 작전으로 전 주민이 피난 이주하였으며 1954년 수복과 함께 다시 귀향했다. 구름을 이불 삼고 지리산을 베개 삼아 살아간다는 와운마을은 지금은 22가구 35명 정도가 거주한다. 그중 5가구는 6~7대째 계속 살며 마을을 지켜온 집안이다. 마을의 주 소득원은 민박업이지만 주민들은 철 따라 고로쇠, 고사리, 두릅과 산나물, 표고나 송이·능이를 채취하고 양봉을 하며 된장과 식초, 곶감도 만들어 판매한다. 워낙 높은 곳에 있다 보니 한여름인데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다. 실제 에어컨을 설치한 집도 5가구뿐이라고 공성훈(53) 이장은 전한다. 하지만 겨울엔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이 많아 많은 주민이 구례나 남원 등 외지로 나가 추위를 피하고 고로쇠 채취 시기에 맞춰 돌아온다.

지도

와운마을도 한때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달궁계곡 최상부에 있던 심원마을을 철거할 때 함께 거론됐는데 마을 수호신인 천년송과 천혜의 경관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오히려 2016년 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지정되는 반전을 맞는다. 마을 뒷산 할머니 소나무로도 불리는 천년송은 와운의 상징이 되었다. 이름과 달리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되고 임진왜란(1592년) 전부터 자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50m 정도 위 한아시(할아버지)송이 자라고 있지만 할매송이 더 크고 오래됐기 때문에 천연기념물(제424호)로 지정됐다. 철갑을 두른 듯, 용의 비늘인 듯 두꺼운 껍질로 감싼 천년송은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당산나무로 매년 음력 1월 10일 남원시 주관으로 당산제가 열린다. 천년송에서 소원을 빌고 성취한 수많은 사람의 입소문으로 인해 지금도 정월이면 외지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한아시 소나무 2㎞쯤 위에 지리산 북부능선 조망터 벌바위가 있는데 출입을 막아놨기에 발길을 돌린다. 와운마을을 떠나려 하자 앞산 중턱까지 내려온 구름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다. 도로명 주소로 바뀌기 전 이곳 행정 주소는 남원시 산내면 ‘부운(浮雲)리 와운마을’이었다.

간장소

뱀사골 등반은 용이 승천하기 위해 머리를 흔들며 꼬리를 쳤다는 전설이 깃든 요룡대(搖龍臺), 용이 목욕을 한 웅덩이인 탁용소(濯龍沼), 용이 못 된 이무기가 살던 뱀소 등 아래쪽 지역은 용과 관련된 못(沼)이 많다. 더 위로 오르면 웅덩이의 모양이 마치 호리병과 같이 생겼다는 병소(瓶沼), 기암괴석과 깎인 바위 모양이 꼭 병풍 같다는 병풍소(屛風沼), 옛날 한 스님이 제(祭)를 올렸다는 신성한 제승대(祭僧臺), 어떤 소금장수가 소금을 지고 가다 빠져 물이 간장처럼 짜졌다는 간장소가 차례로 나타난다. 저마다 설화를 품은 소(沼)를 지나노라면 전설의 고향 속을 걷는 기분이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에는 물길을 건너는 다리가 10개 넘게 놓여 있어 걷는 재미를 더한다.

푸른 숲 냄새, 맑고 서늘한 물소리, 다리 아래 아찔한 풍경, 산새들의 상쾌한 노랫소리, 야생화와 이끼…뱀사골이 그려낸 작품이다.

맨 위의 못 간장소를 지나자 투박한 돌길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화개재를 1.2㎞ 앞둔 지점에 쉼터인 막차가 기다린다. 작은 정자 주위 오디와 산딸기가 보인다. 새콤달콤하다.

막차에서 화개재까지는 된비알의 연속. 계속 함께했던 계곡도 안 보이고 도랑만 한 물줄기만 나왔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곤 한다.

삼도봉

20여 년 전 10월 지리산 첫 종주 때 뱀사골 대피소에서 하룻밤 잤는데 너무 춥고 시끄러워 밤을 꼴딱 새운 적이 있다. 그 산장이 이 부근에 있었는데…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지판 뒤쪽에 흔적이 보인다. 뱀사골 계곡을 살리고자 오염의 죄명을 쓴 대피소는 2007년 철거됐다.

하늘이 조금씩 보이더니 50평 남짓한 평원, 화개재가 환하게 웃으며 맞는다. 여기서 왼편으로 가면 천왕봉, 오른쪽은 성삼재 방향이다. 1315m인 이 고지에서 영호남의 상인들이 화개장터와 남원을 오가며 해산물과 농산물을 교환했다는데 상상이 잘 안 된다.

이제 삼도봉을 거쳐 노루목으로 향한다. 전체적으론 내리막길이지만 역시 지리산은 만만치 않다. 특히 삼도봉(1501m)을 앞두고 만난 550개의 계단은 체력을 시험한다. 계단을 오르다가 등산객을 처음 만났다. 뱀사골로 내려간다고 한다. 기자와 정반대 코스다.

노루목(1498m)에선 잠시 고민에 빠진다. 지리산 3대 봉우리이자 낙조 명소인 반야봉(1732m)으로 갈까, 그냥 통과하고 2시간을 벌까. 시간이 빠듯해 다음을 기약한다.

임겅렬 생물

임걸령(1320m) 샘물을 고대하는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지리산 최고의 수량과 맛을 자랑하는 이곳에서 물병을 채우고 2㎞ 남짓 내려가니 돼지령(1370m)이다. 멧돼지들이 원추리 뿌리를 캐 먹기 위해 자주 출몰해 귀여운 이름을 얻었다. 나무뿌리가 보이고 좀 지루한 느낌이 드는 등산로를 터벅터벅 걷다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선다. ‘언감생심’ 운해가 앞을 막는다. 지리산의 수호신 마고할매의 전설이 서린 노고단(1507m)이다. 지리 10경 중 2경으로 치는 노고운해(老姑雲海)를 제대로 영접했다. 섬진강 쪽에서 몰려온 구름이 노고단 산허리를 감싸는 황홀한 장관에 ‘내가 이걸 보다니’ 절로 감탄한다. 비가 갠 직후라 그런지 온몸을 휘감는다. 사람들이 은빛 옷을 입었고, 실루엣 커튼이 열리고 걷히는 듯 몽환적이다. 뱀사골에서 출발하기 전엔 비가 왔는데 산행에 맞춰 날씨 요정이 비를 멈췄고 노고단에 큰 선물을 던졌다. 모든 것을 다 얻은 기분으로 성삼재(1102m)를 향해 내려간다.

노고운해





syd00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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