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생가'
'생가'는 불타버린 전직 대통령 생가의 복원을 둘러싸고 얽히는 가족사와 주술적 공포를 파고든다. 저자 신재민은 한옥 건축과 수목 신앙, 현대사의 그늘을 겹쳐 한국형 오컬트 호러의 무대를 세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한 채의 집이다. 독재를 일삼은 전 대통령 이운암의 생가가 불탄 뒤, 과거 그 집을 지은 도편수 범근은 아들에게 복원만은 막으라고 남긴다. 복원 공사는 금기와 집착, 혈연의 상처를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사건이 된다.
범근의 아들 재헌은 자신을 밀어낸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안은 채 이운암 손자 건승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불에 탄 옛집을 다시 세우는 일은 생업의 연장이 아니라, 아버지의 유언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선택이 된다.
재헌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화재 흔적이 아니다. 안채 일부만 살피는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균형이 집 전체를 감싸고, 건물의 위치와 조화, 동선까지 어긋난 낌새가 집 안에 숨은 다른 층위를 드러낸다.
대형 트럭 기사 시록이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한 갈래를 더 얻는다. 시록은 어머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의 흔적을 좇다가 이운암 생가에 이른다. 재헌과 시록은 각자 다른 이유로 같은 집에 묶인다.
복원 작업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도 초반부터 분명하다. 범근의 영향력 탓에 업계 전체가 공사를 꺼리고, 재헌과 시록은 귀한 소나무를 구하는 일부터 막힌다. 생가를 다시 세우려는 시도는 건축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금기를 거스르는 일이 된다.
'생가'는 공포를 추상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한옥 건축의 공정과 재료에서 끌어낸다. 도편수와 대목, 기둥과 대들보, 목재를 고르고 세우는 절차가 이야기의 긴장을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목차 역시 집을 허무는 '파가'에서 집터를 닦는 '개기', 주춧돌을 놓는 '열초', 기둥을 세우는 '입주',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을 거쳐 마지막 '생가'로 나아간다. 집을 짓는 순서를 따라가며 서사가 더 깊은 비밀 쪽으로 파고드는 구조다.
소설 곳곳에는 감각적인 장면이 박혀 있다. 트럭에서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붉은 명주 조각, 밧줄에 쓸린 듯 남은 상처, 베어서는 안 될 나무를 잘라냈다는 깨달음은 이 집을 둘러싼 공포가 사람의 상상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베어서는 안 될 나무를 잘라냈다
조사 끝에 드러나는 지하실의 기묘한 공간도 이 작품의 중심축이다. 그 안에서 재헌은 집 아래 숨어 있던 괴이한 존재와, 생가가 보란 듯 더 깊은 심연을 연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복원은 무너진 건물을 세우는 일인 동시에 감춰졌던 무언가를 다시 깨우는 행위가 된다.
작품이 붙드는 또 다른 축은 가족이다. 범근은 유언으로까지 복원을 막고, 재헌은 그 금지를 거슬러 완공을 밀어붙인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생가의 저주와 별개인 사적인 상처처럼 보이지만, 서사가 진행될수록 두 층위는 분리되지 않는다.
시록의 사연도 이 구조를 넓힌다. 평생 만나지 못한 아버지의 흔적을 좇는 과정이 재헌의 선택과 맞물리면서, 생가 복원은 여러 인물의 혈연과 부채를 한곳으로 끌어당기는 사건이 된다. 집 한 채가 인물들의 과거를 다시 호출하는 셈이다.
과거와 현재, 국내 지방과 해외를 오가는 전개도 눈에 띈다. 영상화에 기반을 둔 얼개를 먼저 세운 작품답게 장면 전환이 빠르고, 전직 대통령 일가의 비밀과 현장 작업의 긴장을 병치하며 서사를 밀어붙인다.
애초 이 작품은 시나리오로 먼저 준비됐다. 영화를 전공해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신재민은 제작의 현실적 장벽을 거친 뒤 이 이야기를 소설로 다시 썼고, 오래 다듬은 소재와 장르 감각을 한 권에 묶었다.
'생가'는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대상 수상작이다. 공모전 중·장편 부문에 접수된 1600여 편 가운데 예심부터 최종심까지 높은 평가를 받으며 만장일치로 당선됐다.
△ '생가'/ 신재민 지음/ 408쪽
[신간]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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